픽사, 마블, 폭스 등을 인수하며 디즈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CEO 밥 아이거가 은퇴한 지 2년 만에 다시 디즈니 CEO로 재선임되었다는 기사를 봤다. 이 소식을 들으니 우리 회사 CEO께서도 추천하셨던 책인 <디즈니만이 하는 것>이 생각났다. 나중에 알게 된 내용인데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였던 빌 게이츠도 이 책을 강력히 추천했다고 한다. 확실히 읽어보니 CEO들이 추천했을 만큼 경영 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면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을 것 같은데 사실 내겐, 특히 사회 초년생 입장에서는 와닿는 내용이 많지는 않았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재밌는 경험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담고 있는 내용뿐만 아니라 읽는 경험에서도 경영에 관심 있는 사람이나 이와 관련된 상식이 있는 사람이 읽는다는 가정을 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책을 읽다가 아무런 소개 없이 루퍼트라는 사람이 나왔는데, 나는 몇 페이지를 더 넘겨서 내용을 읽고 나서야 이 사람이 폭스 회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문화와 다른 분야의 책을 읽으면 이렇게 순간 멈칫하게 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을 경험한 게 재밌었다.
얼마 전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었는데 이 책을 읽다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중간에 화폐 단위로 파운드를 쓰는 내용이 있었는데, 1파운드가 얼마쯤 되는지 몰라서 순간 '그래서 어느 정도의 규모인 거지?' 하는 멈칫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글을 쓰면서 '원'단위에 대한 설명을 굳이 넣지는 않은 것처럼 작가의 잘못은 아니지만, 번역하면서 주석을 넣어줬으면 더 물 흐르듯이 읽혔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요즘 자주 보는 경제 유튜브 중에 <슈카월드>라는 채널이 있다. 경제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잘 풀어줘서 주변에서도 많이 보는 채널이다. 이제 보니 여기에서는 가장 유명한 기축 통화인 달러 단위의 금액도 모두 한화로 환전하면 얼마인지 알려주면서 설명한다. 아마 이런 작은 배려들까지 포함되어 사람들이 딱딱한 전공 같은 이야기가 편하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다.
에세이를 쓰기 전에 다른 기술 블로그를 쓴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독자들이 얼마나 알고 있다고 가정해야 할지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전공 관련 글이야 어느 정도 저런 가정을 해도 되지만, 지금 쓰는 에세이처럼 독자의 범위를 정하지 않는 글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써야 할 텐데, 과연 내가 쓴 글은 사람들이 멈칫하지 않고 읽었을지 생각해 보게 됐다. 개발자라서 개발 관련된 이야기에서 인사이트를 받아 쓸 때도 종종 있는데, 이때 언급한 개발 관련 내용들은 이러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 앞으로는 글 쓸 때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