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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Mar 30. 2023

6년 만의 해외, 일본 여행 주저리

원래는 여행기로 써보려 했으나 역시 일기 형식의 글은 잘 못 쓰겠다. 그리고 쓸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보고 먹고 겪은 추억의 기록보단, 이에 얽혀든 생각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글은 여행기보다는 여행 이야기에 내 생각을 주절주절 덧붙인 여행 에세이, 여행 주저리가 되시겠다.


여행, 다른 세계의 경험

여행이 힐링이 되는 이유는 경치나 음식, 체험 같은 것도 있겠지만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다른 세계로 가는 느낌에 지치고 힘든 현실에서 탈출한 기분이 크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특별한 컨텐츠를 하지 않고 가만히 걸어가면서 우리나라와의 차이만 느껴져도 해외여행은 무조건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첫째 날에는 주유패스를 따라 츠텐카쿠 타워부터 우메다 스카이 빌딩까지 오사카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나중에 걸음수를 보니 이날 하루 동안 3만 보를 걸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일상의 사소한 부분까지 우리와 다른 문화를 체득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의 가장 큰 차이라고 느낀 부분은 아날로그였다. 팀원들께 일본은 아직도 서류와 도장의 나라여서 협업하기 힘들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일상에서도 많은 부분이 아날로그에 머물고 있는 일본은 신기했다.


그중 제일 먼저 발견했던 것은 지하철 종이 광고였다. 지하철에 달려있는 모든 광고가 종이 포스터였다. 디지털 시대를 넘어서 AI 이야기도 활발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종이라니. 벽에 있는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생각했는데 천장에서도 끊임없이 펄럭이는 종이 포스터들은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 교체하기 귀찮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걸어놔도 손상되지 않는다는 시민의식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기도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일본은 지하철이 국영화가 안 되어서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나라는 지하철이 국영화가 되어 환승도 잘 되고 가격도 저렴하기 때문에 적자를 매우려면 광고를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디지털 화면으로 광고를 운영해야 제한된 면적에서 여러 회사의 광고를 유치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사철이어서 지하철 요금으로도 충분히 수익이 나오기 때문에 굳이 모니터를 달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일본이 아날로그라는 걸 또 느끼게 해준 부분은 결제 시스템이었다. 우리나라는 현금 사용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삼성페이, 모바일 운전면허증이 나온 뒤로는 지갑 자체를 안 들고 다니는 사람도 많아졌다. 최근에 애플 페이가 현대카드와 손잡고 한국에 들어서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갑을 안 들고 다니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현금의 나라인 것 같다. 비단 우리 여행객들이 현금을 쓰는 것만 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편의점, 식당, 가게 등 결제를 하는 웬만한 곳에 동전/지폐 계수기가 아예 포스기와 연동이 되어있었다. 지폐 한 장을 받아도 계수기에 넣어서 계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거스름돈도 계수기가 자동으로 계산해서 내주기 때문에 직원들은 편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일상에서 가장 체감된 차이는 좌측통행이었다. 그동안 우측통행/좌측통행은 운전할 때만 신경 쓸 내용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이상하게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무리들과 계속 마주치는 상황이 생겼는데, 알고 보니 우리들은 다들 무의식적으로 우측통행을 하고 있고 그들 또한 자연스럽게 좌측통행을 하고 있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4일 동안 의식적으로 좌측통행으로 바꾸고 다니다가 한국에 오니 이제는 우측통행인 사람들과 부딪히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외 짤막한 경험으로는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있었다. 일본에는 스크린도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말 오랜만에 지하철이 오는 풍압에 머리가 날리면서 엔진 냄새를 맡는 경험을 했는데, 신선하긴 했지만 또 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었다. 그리고 차액을 받는 방식도 신기했다. 예를 들어 원래 3500원을 냈는데 다시 보니 4700원을 내야 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1200원 더 내시면 돼요'라고 했을 것 같은데 일본은 3500원을 우리에게 돌려준 다음 4700원을 내라고 하는 부분이 낯설면서도 재밌었다.


튀기는 싫지만 평범하기도 싫은

주목받는 걸 싫어해서 튀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들과 똑같은 것은 싫은 애매한 삐뚤어짐이 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네'라고 정도는 해보고 싶은 반항심이다. 그리고 나는 특히 사진을 찍을 때 이런 반항심이 표출되는 편이다.


첫째 날에 찍었던 이 오사카성 사진이 이런 나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유적이나 랜드마크를 보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평범한 오사카성이었다면 우리가 나온 기념사진이라면 모를까 건물만 찍어서 널리고 널린 오사카성 컬렉션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 뒤에 마치 오사카성의 더듬이처럼 타워크레인이 뻗어있는 상황은 얘기가 다르다. 단순히 보기에도 재밌지만 과거(유적)와 미래(건설)가 조화를 이룬 현재의 모습이라는 의미도 있지 않는가. 이런 걸 발견하면 안 찍고는 배길 수 없다.


둘째 날에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찍은 기념사진에는 특히 이렇게 조금씩 변화구를 넣는 사진들이 많다. 이 사진은 해리포터존에 있던 위즐리 자동차 포토 공간에서 찍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옆에 서있거나 기대서 찍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K-교통사고란 무엇인지 보여줬다.


이 사진은 마리오 월드에 있던 포토 공간에서 찍었는데, 자세히 보면 뒤쪽 두 파이프는 들어가서 찍으라고 뒤에 열려있는 입구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차려두면 더욱 그대로 따르기 싫어진다. 게다가 다들 안에 서있거나 아래에서 나오는 모습만 찍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 마리오 모자도 샀겠다, 맨날 점프만 하는 마리오의 의미도 담아 점프해서 파이프로 들어가는 모습으로 찍었다.


혹은 다른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좋아한다. 마리오 월드에서 나오는 길에 전봇대를 봤는데 마리오 게임에서 마지막에 점수를 내는 깃발이 생각났다. 마침 아래 정육면체 받침도 있는 게 혹시 의도한 것인가 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 그래서 이 컨셉으로도 사진을 하나 찍었다.


우리에겐 지갑이 있다

직장인이 되고서는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었는데, 대학생 때의 여행과 비교해 본다면 역시 가장 큰 차이점은 자본력이다. 이제는 다들 돈을 벌기 때문에 숙소도 좋은 곳으로 가고, 비행기도 가격보다는 시간을 고려해서 구매한다. 그리고 기념품도 더욱 과감히 살 수 있다. 마침 밤에 떠들다가 <우린 어른이야 우울하면 돈을 써>라는 노래가 나왔는데 정말 우리 상황에 딱 맞는 노래였다.

각박한 세상이 괴롭혀도, 괜찮다 우리에겐 지갑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건물주도 아니고 이제 사회 초년생 입장에서 정말 막 쓸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나름대로 두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 번째는 추억을 되살려주는 물건들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망각의 동물인데다 특히나 나는 건망증도 심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까먹기 쉽다. 물론 이를 대비해서 이렇게 글로 정리를 하긴 하지만 내가 내 글들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자주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실물로, 특히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할법한 것들로 기념을 하면 사용할 때마다 그날의 행복이 상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으로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기념품을 둘러보다 보니 컵을 많이 사게 됐다. 그러면 이 컵들로 마실 때마다 일본에서의 추억이 생각나지 않을까.


가운데 있는 컵은 코난 굿즈인데, 예전부터 코난 만화를 좋아했지만 칵테일을 취미로 가지고서는 더 좋아하게 됐다. 왜냐하면 코난의 검은 조직의 코드명은 모두 술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바도스처럼 코드네임으로 사용된 술에는 약간 더 애정이 가는 게 있다. 그리고 이 컵은 이러한 나의 코난과 칵테일에 대한 팬심을 모두 완벽히 담는 작품이었다. 술도 담아서 마실 수 있는 컵에 검은 조직의 코드명과 아이콘이라니. 이건 참을 수 없지.


맨 왼쪽은 사실 많이 아쉬웠던 슬리데린 컵. 사실 해리포터 기숙사 중에 래번클로를 제일 좋아한다. TMI로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는 루나 러브굿이다. 하지만 세상은 주인공과 빌런만 기억해서 그런지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컵밖에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그래도 두 번째로 좋아하는 기숙사인 슬리데린 컵을 샀다.


아니 근데 이 굿즈는 후플푸프도 있는데 래번클로만 없는 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닌가?


오른쪽은 마리오의 부끄부끄 캐릭터 컵. 이 캐릭터도 좋아하긴 하지만 마리오 캐릭터들 중에 원탑이야! 하는 건 아니었는데 보라색을 좋아해서 손잡이를 보자마자 고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사고서 보니 뒷면이 이렇게 귀여운 모양이었다니! 모르고 사서 더 만족감이 좋았던 굿즈였다.


두 번째 구매의 기준은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특히 애정 하는 취미가 있으면 더 시너지가 난다. 위에서 잠깐 말했듯이 취미로 칵테일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리큐르들을 샀다. 이것들을 사기 위해 셋째 날에 덴덴타운부터 도톤보리, 신사이바시까지 열 군데는 넘는 리큐르샵을 탐방했다. 계속 걸어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고 나니 들고 다니는 내내 뿌듯했다. 특히 왼쪽의 에르메스는 조엽수림이라고 정말 좋아하는 칵테일을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에 발견하고서 행복했다. 이런 수확 덕분에 여행의 가치도 더욱 올라간 느낌이었다.


모순의 위로, 노천온천

3일 동안 8만 보를 훨씬 넘게 걸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그 모든 피로를 녹여줄 노천온천이 있는 아리마 온천이었다. 노천온천은 내가 처음 일본 여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무조건 가고 싶다고 찍어놨던 컨텐츠였다. 그래서 저녁에도 들어가고 아침에도 모닝 온천까지 잔뜩 즐기고 왔다. 노천온천은 두 상반된 개념의 모순이 참 오묘하게 다가오는 신기한 곳이다. 기본적으로 온도에서부터 온천에 담그고 있는 부분은 따듯하지만 공기에 노출된 위는 시원한 느낌이 든다. 울타리는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수풀과 하늘이 공존한 야외에서 나체로 온천욕을 하고 있는 것도 느낌이 이상했다. 그리고 이 모순된 개념들이 대비되고 정렬되면서 마치 차갑고 냉정한 세상에 노출되어 나를 모질게 굴어도 내 깊은 곳 안에서는 따듯함이 여전히 피어나고 있다는 위로까지 느껴지는 신비한 공간이었다.


이렇게 온천까지 즐기면서 오랜만의 해외여행을 알차게 다녀왔다. 그리고 확실히 나는 내향인이라고 느껴진 게 마지막 날이 되니 사회 에너지가 많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날은 간사이 공항으로 이동하는 배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책을 읽으면서 충전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래도 여행은 역시나 좋다. 특히 멀리 갈수록 좋은 것 같다. 언젠가 또 해외여행 글로 돌아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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