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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Mar 27. 2023

그냥, 별 이유는 없어

뿡뿡이가 좋아요 왜? 그냥 그냥 그냥


어릴 때 TV에서 자주 봤던 <방귀대장 뿡뿡이>의 주제곡. 같이 나오는 인물이 "짜장면"이 아니라 "짜잔형"이었다는 것을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던 프로그램이다. 신기하게도 방송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데 이 노래만큼은 20년이 지난 아직도 "그냥"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생각날 정도로 기억에 남아있다. 갑자기 이런 추억 팔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요즘 "그냥"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시작은 '아 좋다'라는 감정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최근 들어서 갑자기 '아 좋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생겼다. 여기서 신기한 건 정말 다양한 상황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친구들하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혼자서 책을 보다가, 봉사활동을 하다가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일하다가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타이밍도 참 다양했다. 어떤 활동을 하던 중에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끝나고 집에 가면서 돌아보던 중에 들 때도 있었다. 이렇게 너무 서로 다른 상황이다 보니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그 외에도 이유를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내 방 인테리어에 달이 많은 것을 보고 왜 달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어떻게든 대답해 보긴 했지만 시원하게 결론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그냥"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이 잘되지 않았던 것 같다. 돌이켜 신기하게도 '좋아한다'라는 감정과 연관되었을 때 특히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굳이 이유를 찾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인을, 원리를, 그리고 그 아래의 근원을 탐색하기 위해 고찰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면서 갑자기 이유를 찾지 않고 '그냥'이라는 말로 때운다는 것에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최근에 레코드판 판매량이 수십 년 만에 CD 판매량을 이겼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CD가 등장하고서 실용적이라는 이유로 레코드 시장을 무섭게 장악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람들이 음악을 모두 전자기기로 듣자 똑같은 실용적이라는 이유로 인해 CD 시장은 무섭게 죽어갔다. 이 뉴스를 보자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반대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이 싫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CD 시장은 죽어가면서도 레코드 시장은 꾸준히 살아남았던 것은, 레코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레코드 그 자체를 그냥 좋아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들은 이유 없이 그냥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더 깊이 생각해 보자면,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명확하다면 사실 무언가가 아니라 그 이유를 좋아하는 게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위에서도 실용적이라는 이유로 CD를 좋아했다면, 사실 CD가 아니라 실용성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 실용적인 것들이 나와서 갈아타더라도 내가 실용성을 좋아한다는 것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수학에서 명제의 기저로 내려가다가 더 이상 증명할 수 없는 가장 기초적인 성질들을 공리라고 정의해버리고 결론낸 것처럼, 이렇게 이유의 이유를 찾아 기저로 내려가다 보면 결국 모든 것들은 '그냥'이라는 공리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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