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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ul 04. 2023

초콜릿은 왜 달콤할까

어릴 때 반찬투정을 하면 자주 듣던 말인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입시할 때 선생님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영어권에도 ‘no pain no gain’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에 불평을 해본 적은 있어도 의심을 하진 않았다. 그래, 모든 일에는 당연히 대가가 따르는 법이지.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발표한 진화론과 자연 선택. 자연적으로 환경에 더 알맞은 종이 살아남아 번식을 하며 진화가 이루어 졌다는 이론은 당시 창조론을 주장했던 기독교의 신념을 깨트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진화론 들었을 때 “우리는 왜 초콜릿이 달콤하게 느껴지도록 진화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몸에 좋은 음식이 달고 몸에 나쁜 음식이 쓰게 느껴지도록 진화했으면 더 생존에 유리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우리가 보통 같은 인간이라고 느끼는 문명의 시작은 겨우 수천 년 전이었다. 현대의 기호와 가치관이 공유되는 시기로 생각해 보면 아무리 길게 잡아도 수백 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과 비교해 생각하면 긴 시간이지만 생물의 진화가 이루어지기엔 너무 짧다. 인간의 생물학적인 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십만 년 동안 살았던 수렵채집 시기의 인간을 생각해야 한다. 당시에는 음식을 쌓아두는 시기가 아니었다. 주 에너지원인 과일이나 고기를 자연스럽게 섭취하기 위해선 탄수화물(당), 단백질, 지방이 맛있게 느껴져야 했다. 아무거나 먹다가 실수로 독초를 먹는 일을 피해야 했고, 대부분의 독초들은 쓴 맛이 났다. 즉, 그 당시 인류는 맛있는 걸 먹고 맛없는 걸 안 먹으면 생존에 유리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써야 한다는 진리 따위는 세상에 없었다. 진화론은 이렇게 150년의 시간을 넘어 나의 신념도 깨트렸다.


고찰 중독자는 여기서 또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곁에는 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들만 남아있을까. 생활양식이나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경제학의 게임이론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맛없는 것을 먹고 상했던 기분이나 어떤 일을 하는 데 들였던 노력, 시간 등을 모두 포함해서 비용이라고 해보자. 세상의 모든 것을 비용과 가치의 관계로 바라보면 네 종류로 나눌 수 있다.


1. 비용이 크고 가치가 큰 것

2. 비용이 크고 가치가 작은 것

3. 비용이 적고 가치가 큰 것

4. 비용이 적고 가치가 작은 것


우선 2번은 고려할 가치도 없다. 그 어떤 선택지보다도 하위 호환이다. 반대로 3번은 그 어떤 선택지와 비교해도 상위 호환이다. 모두가 매력적이라 느끼고 3번을 선택할 것이다. 순식간에 소비되어 사라져버리거나, 희소성으로 인해 비용이 올라가서 1번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비용이 큰 대신 가치가 크거나, 가치가 작으면 비용이 적은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다. 혹은 3번이 아무리 소비되어도 충분히 공급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3번이 새로운 표준이 된다. 기존의 1번과 4번은 모두 쓸모없는 2번이 되어버리고 3번 안에서 미묘한 차이로 인해 새로운 1, 3, 4번이 나뉘게 된다, 그리고 위의 과정이 반복된다. 어떻게든 우리 곁에는 결국 1번과 4번밖에 남지 않는다.


억울하다. 늦었다는 이유로 이전 사람들은 다 빨았던 꿀을 나는 얻지 못하는 것인가? 그냥 이 결과에 순응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세상에 굴복하고 지는 느낌이 드는 게 싫어서 결심을 한다.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꿀이 있는지 찾아보고 나서 결정하기로. 꿀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쉬웠다면 꿀로 남아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내겐 휴가를 땅에 버리면서 깨달았던 팁이 있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개발자들의 부대여서 육체적인 훈련도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병사들도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자 주임원사께서 체력검정에서 미달을 받는 병사는 외박을 하루 제한한다는 초강수를 두셨다. 이 말을 듣고 가장 문제였던 오래달리기를 연습해 봤지만 당시 내 체력 상황에선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휴가 하루를 위해서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전형적인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상황이었다. 휴가를 포기해야 할지 고통을 참아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둘 중 하나를 희생해야만 하는가. 그리고 이 생각은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왜 휴가를 나가려 하는가. 휴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휴가의 목적은 즐거움이다. 운 좋게도 좋은 부대원들을 만나서 탈출해야 한다는 마음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고 더 다양하게 노는 게 휴가의 목적이었다. 휴가를 나가서 무엇을 가장 많이 하나 생각해 보니 보드게임 카페에 가는 거였다. 그러자 문득 부대 안에서도 보드게임을 할 수 있다면 고생하면서 휴가 하루를 얻어내지 않아도 충분히 그에 상응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바로 보드게임 동아리 회장이 되었다. 부대에 보드게임 문화를 전파하는 것은 오래달리기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오히려 즐거웠다. 말 그대로 꿀이었다.


내가 꿀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수단과 목표를 분리했기 때문이다. 만약 휴가만을 바라보고 휴가만을 목표로 생각했다면 해볼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휴가에 “왜?”라는 질문을 하는 순간 모든 게 변했다. 그 순간 휴가는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그 뒤에 있는 진정한 목표가 보이면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펼쳐졌다. 더 멀리서 출발한 물줄기는 더 많은 갈래와 맞닿아 있다. 남들이 찾지 못한 길을 찾기 위해서는 수단 뒤에 있는 목표를 바라볼 줄 알아야 되는 것이었다.


수단을 넘어서 목표를 바라보기 위해 “왜?”라는 질문을 하고 그 대답으로 얻은 길은 나만의 길이 된다. 휴가는 나뿐만 아니라 모든 군인이 바라는 목표다. 쉽게 휴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치열하게 경쟁을 해야 하거나 이미 없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보드게임이라는 길은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이었다. 아무런 경쟁 없이 편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다른 일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모두가 바라보는 돈, 명예, 인기는 너무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그 뒤에 있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본다면 생각보다 쉬운 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자신에게 확신이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수많은 의심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보드게임을 전파하는 것에 성공하면 즐거운 생활만이 남는다는 확신. 그 확신 아래 보드게임을 구비하고, 룰 마스터를 하고, 대회를 구상하고, 랭킹 시스템을 도입했다. 만약에 ‘그냥 참고 휴가 나갈걸...’하는 생각에 뒤돌아봤다면 이런 일들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자신을 믿었던 덕에 기꺼이 즐겁게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고 보드게임 전파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우수동아리 표창까지 받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이 생각을 헬스에 접목해 보고 있다. 요즘 하고 있는 활동 중에 제일 재미없는 게 헬스장에 가는 것이다. 하체와 유산소는 펌프로 커버가 된다. 며칠 전부터 하루는 오락실 가서 펌프를 하고 하루는 헬스장에서는 상체 위주로 하는 걸 번갈아가면서 하는 중이다. 이제 상체 운동을 대체할 재밌는 수단만 찾으면 헬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좋은 후보로 클라이밍을 눈여겨보고 있다. 얼마 전 친구 따라 처음 클라이밍을 해봤는데 승부욕을 불태우는 게 꽤나 흥미롭기도 했고 다음날 온몸이 난리 치는 걸 보니 충분히 운동도 되는 것 같았다. 고통 없이 운동하기. 어떻게든 해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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