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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ul 16. 2023

부족함은 뿌듯함이 된다

얼마 전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에 다녀왔다. 다양한 그림작가분들이 자신들의 굿즈나 작품들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행사로 작년에 알게 된 뒤부터 꾸준히 다니고 있다. 이 행사를 가보면 인공지능 때문에 미술 업계가 망할 것 같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말인지 느껴진다. 최소 세 자릿수는 되는 분들의 각양각색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남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대체될 수 있어도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사람들은 꾸준히 사랑받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주로 그림엽서를 사 모으는 편이다. 크기도 보관하기에 좋고 방 꾸미는 인테리어용으로도 좋다. 이번 기회에 엽서들을 보관해둘 파일도 사고, 벽에 걸어뒀던 그림들도 새로 산 작품들로 바꿔봤다.


요즘은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인터넷 방송인들을 뜻하는 것 같지만, 나는 그전부터 스스로를 크리에이터, 창작자라고 부르곤 했다. 뭐든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나만의 것을 만드는 것을 추구하게 되면서 제작자(maker)에서 창작자(creator)로 진화했다. 향수, 칵테일의 창작 레시피를 개발하고 최근에는 마술도 만들어봤다. 창작 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흔히 예술이라 부르는 음악, 미술의 영역에도 저절로 눈길이 갔었다. 이내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적어도 효율이 낮은 분야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에 시간을 더 투자하기엔 새로 도전해 볼 창작 영역이 많았다.


직접 만들지 못하자 다른 수단으로 채우게 되었다. 접어둔 창작욕은 이내 수집욕으로 발현되었다. 향수를 처음 만들어보게 된 계기는 백화점에서 30만 원이 넘는 향수를 보고 직접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던 마음이 들어서였다. 실제로 공방에서 8만 원 주고 만든 향수가 내 취향에는 훨씬 잘 맞았다. 하지만 음악이나 그림은 다르다. 나도 가능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예술 작품들의 수집에 지출하는 비용은 아깝지 않다. 오히려 뿌듯하다.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맞추는 작품들을 탐색하고 모으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이런 작품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음에 '이러려고 돈 벌지'하며 뿌듯해한다. 이런 소비는 상품의 소유를 위한 대가의 개념을 넘어 창작자에게 이런 작품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 앞으로도 좋은 작품 활동을 바란다는 마음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있어서 두 배로 뿌듯한 것 같다. 모든 걸 가져야 행복할 것 같지만 때로는 이렇게 부족한 재능 덕분에 생기는 행복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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