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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Jul 22. 2023

무탈하면 좋겠다

사람 감정이란 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특이하게 선택적인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 일에 대해서는 마치 제3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일에 대해서도 공감은 잘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드라마나 소설에는 공감을 잘 해서, 종종 보다가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이렇게만 두고 보면 현실 세계에는 공감을 잘 못하고 작품에는 공감을 잘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도 확 공감이 오는 경우가 하나 있다. 사건, 사고, 참사, 재해 같은 뉴스에 나올법한 큰일, 특히 사망자라도 나오면 마음이 급속도로 심란해진다.


어릴 때 지냈던 대전은 흔히 노잼도시라고 놀리지만 그만큼 평화로운 곳이었다. 거주지 만족도 조사에서 94%가 넘는 놀라운 수치로 1위를 할 정도였다. 지리적으로 분지여서 자연재해는 TV나 신문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 경기도로 올라왔는데 바람에 나무가 쓰러지거나 기상 악화 때문에 학교가 쉰다는 것을 그때 처음 봤다. 이런 평온한 동네에서 살아서 그런지 각종 사건사고에 더 내성이 없는 것 같다. 소식이 들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마음이 무거워져서 아무것도 집중이 안 된다.


요즘 이런 사건들이 점점 옆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작년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 일주일 전 친구가 할로윈 때 이태원에 놀러 갈까 물어봤었다. 극 내향형이라 그런 곳은 부담스럽다고 거절해서 다행이었다. 올해 2월쯤에 서울로 이사하기 전엔 정자역 근처에 살았는데, 밤에 탄천 따라 산책할 때 하면서 정자교 아래를 자주 지나다니곤 했다. 이사하고 바로 두 달 뒤쯤인 4월에 그 다리가 무너지면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부모님은 세종에 계시는데, 지지난 주에 동창분들 만나러 지나가셨던 청주 오송 지하차도가 지난주에 침수됐다. 며칠 전 지금 살고 있는 자취방에서 1km밖에 안 떨어져 있는 서이초등학교에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정자교가 무너졌을 때 회사도 분당이고 그전에 자취했던 곳도 바로 근처라 괜찮냐는 연락을 여러 명에게 받았다. 다행히 서울 쪽으로 이사해서 괜찮다고 하자 몇몇 분이 운이 좋았다고 얘기해 주셨다. 운이 좋다. 이 말을 듣자 처음 든 감정은 씁쓸함이었다. 왜 운이 좋다는 말을 듣는 상황이 나와야 할까. 왜 누군가는 운이 좋아서 피할 수 있었고 누군가는 운이 나빠서 당해야만 했을까. 그냥 아무도 운과 상관없이 지나갈 수는 없었을까. 나는 운이 좋아서 살았고 누군가는 운이 나빠서 사망했다는 사실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려 하는 편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면서 냉철하게 상황을 해결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은 너무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막을 수 없는 것들의 비중이 너무 크다.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어떻게든 뭔가를 했으면 이런 일들을 막을 수 있었을까. 열심히 고민해 봤지만 결국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심폐소생술 하는 방법 잘 인지하기, 자동차 창문은 모서리를 때려야 잘 깨진다 같은 위기 대처 지식 알아두고 주변에도 알려주기 정도밖에 없었다. 끝없는 무기력함이 몰려온다.


세상은 당연히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는 것은 잘 안다. 행복, 기쁨, 성공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무탈하면 좋겠다. 세상 사람들 모두 무탈했으면 좋겠다. 휴머니즘적인 마음도 아니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도 아니다. 하지만 빈말로 그냥 하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단지 세상이 힘들면 나도 힘들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이다. 그러니 다들 사건 사고 없이 무탈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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