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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Nov 16. 2023

크런치 모드 해제!

크런치 모드. 주로 게임업계에서 쓰는 말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몸을 갈아 넣는 기간, 최근 한 달 정도 크런치 모드였다가 드디어 해제했다. 다행히 회사 일 때문은 아니었고 개인적으로 크런치 모드를 걸어놨었다. 한동안 루틴적인 일상을 지냈다. 퇴근하고 드럼 연습 갔다가 헬스장 갔다가 집에 오면 책 읽거나 글 쓰다가 잠들기. 주기적으로 참석하는 독서모임, 보드게임, 봉사활동. 안정되고 행복하긴 했지만 이러다 안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반항심으로 이런 루틴에 균열을 내보고 싶었다. 특히 열정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새로운 경험을 시도한 게 없진 않았지만 정해진 루틴 사이사이에 빈 시간이 많진 않아서 다양한 걸 조금씩 병렬적으로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깊이가 부족했던 것 같다. 빠져들듯이 무언가 해본 지 꽤 된 것 같다. 그래서 잠깐 일상을 깨고, 여유를 줄이고, 크런치 모드에 돌입했다. 목표는 두 개로 정했다. 하나만 하려다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건 내 근성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두개로 했다.


첫 목표는 다이어트였다. 체중이 있는 편도 아니고 오히려 평균보다도 마른 편이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너가? 왜?"라는 반응이 나온다. 나도 생각을 놓지 않고 적당히 관리만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틈나면 헬스장 가서 운동하고, 유산소는 펌프로 대체하고, 먹는 양은 어차피 많지 않으니 너무 편식만 안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안일했다. 적당히는 사람 몸을 바꾸지 못한다. 어느 정도 신경을 쓰긴 하는데도 여전히 인바디에서 C 모양이(체중, 근육량, 체지방에서 가운데 근육량이 움푹 들어간 모양) 나왔다. 제대로 마음잡고 조절을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계속 유지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고 싶었다. 체지방률 12%를 목표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다이어트는 크게 두 개를 신경 쓰면 된다. 운동과 식단. 운동은 빈도를 늘렸다. 자칫 강도를 늘렸다가 다치면 안 하니만 못하는 것 같아서 강도를 늘리지는 않았다. 원래는 저녁에 없는 날에만 헬스장에 가거나 펌프를 하면서 운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 약속이 몰릴 땐 일주일에 한두 번도 안 가는 경우도 생겼다. 이제는 약속이 있는 날도 운동을 하기로 했다. 에너지를 소모하고 집에 겨우 돌아온 상태에서 헬스장까지 가기는 힘드니 집에서 맨몸 운동이라도 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팔굽혀펴기랑 맨몸 운동. 펌프는 다칠 위험은 없으니 즐기는 정도를 넘어서 다리가 후들거려서 다음 판을 도저히 못할 때까지 땀을 쫙 빼고 오기로 했다.


식단은, 애초에 많이 안 먹는 편이라 종류에 신경 썼다. 우선 거의 당을 끊었다. 원래도 군것질이나 간식은 잘 안 먹긴 하지만 이제는 식사 후식이나 같이 나오는 과일 등도 모두 배제했다. 마시는 것도 웬만하면 물, 아메리카노, 제로 음료만 마신다. 밀가루도 끊었다. 면과 빵 모두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끊었다. 밥도 가능하면 흰쌀밥보다는 현미밥을 먹었다. 그렇게 크런치 모드로 한 달을 살고 드디어 다시 인바디를 재봤다. 혹시나 하는 논란을 배제하기 위해 아침 공복에 운동을 하지 않은 상태로 쟀다.



해냈다. 드디어 C를 탈출해서 D가 됐다. 목표도 초과 달성했다. 체지방률이 12%를 넘어서 11.8%를 찍었다. 사실 생각보다 몸이 맘에 들진 않는다. 이 정도 빼면 복근이 나올 줄 알았는데 선명하게 보이려면 8%까진 빼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일단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을 증명했다는 게 만족스럽다. 그리고 아침 공복에 보면 희미하게 윤곽 정도는 보인다. 식사를 하면 바로 사라지는 게 문제지만. 체지방을 한번 줄여놨으니 이제 다시 벌크업과 커팅을 하다 보면 내년쯤에는 제대로 된 복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두 번째 크런치 목표는 토이 프로젝트였다. 루틴을 지켜가며 조금씩만 다른 활동을 하다 보면 창작활동을 하기 애매하다. 각 잡고 몇 시간씩 집중해야 나아갈 때가 많은데 여유 시간이 별로 없다 보니 괜히 계획만 계속 구체화하면서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미뤄뒀던 프로젝트를 하나 해보기로 했다. 계획만 짜둔 프로젝트가 워낙 많아서 어떤 걸 시작할지도 고민이 많았다. 올해는 책에 대한 마음이 컸으니 책과 관련되어 독서모임과 독서기록에 관련된 서비스를 만들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과 협업해서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1인 프로젝트로 하기로 결정했다. 자랑을 조금 해보자면 난 다 할 줄 안다. 데이터부터 서버, 웹까지 모든 영역을 할 줄 안다. 그래서인지 회사에서도 모든 걸 하는 게 좋은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혼자서도 충분히 다 만들 실력은 된다. 다른 사람과 같이 하면 일정을 맞추는 게 걱정되기도 했다. 특히 나는 크런치 모드로 갈아 넣으면서 할 예정인데 이게 팀원들에겐 부담이 될 것 같았다.


하필 회사 일도 바빠져서 잠을 줄여가면서 했다. 최근 2주 동안은 하루 평균 3시간 정도 잔 것 같다. 베타테스트를 부탁하려면 직접 만나서 얘기하면서 알려주고 싶은데 마침 이번 주에 독서모임 관련된 분들과 약속이 모여있어서 목표 날짜도 생겼다. 사실 목표 기능 중 하나를 아직 개발하지 못한 상태로 베타테스트를 시작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충분히 열심히 했다. 가끔 아침에 일어나면 헛구역질이 나고 구각염도 생겼다. 여기서 더 했으면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근 한 달을 정말 몰입해서 살았다. 열정이라는 걸 다시 경험한 것도 재밌었고, 역시 난 하려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효능감을 제대로 느낀 게 컸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여유를 가져보려 한다. 구현하지 못했던 마지막 기능만 개발해놓고 진짜 쉴 것이다. 그동안 못 읽은 책들도 찬찬히 읽고 이런저런 고찰도 맘 편히 해보고 싶다. 마침 최근에 차가 생겨서 운전 연습 겸 여기저기 돌아다녀 볼까도 생각 중이다. 겨울이 왔으니 뜨개질도 해야 한다. 뜨개질을 잘 하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조급하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곧 연말이니 올해의 정리도 시작해야겠다. 연말 회고록에 쓸 내용도 슬슬 생각해 봐야지.



p.s. 호옥시나 제 토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 https://crumbook.com/about ] 여기에 자세한 소개가 있습니다. 사용해 보고 싶으시다면 소개 아래에 적어둔 메일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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