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사수께서 내가 회의 때마다 자주 앉는 자리에 작은 스티커를 붙여주셨다.
“잘 해왔고, 잘 하고 있고, 잘 할 거야.”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엔 묘한 힘이 있었다. 나는 그 글을 보며 감동과 걱정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가 나를 응원해 준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혹시 그냥 잘하고 있는 척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잘하라고 돌려서 말하는 건가?’
그 문장은 위로 같았지만, 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하는 작은 거울이었다. 그날 이후 ‘자기 위안’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자기 위안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기 위안’이라는 작은 방패를 사용한다.
괜찮아, 그동안 정말 힘들었잖아. 이제 좀 쉬어도 돼.
오늘은 국수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 시작하면 돼.
이런 말들은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지만, 누군가로부터 혹은 스스로에게서 그런 문장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 조용히 내려앉아 나를 잠시 안심시킨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요즘 세상이 너무 각박하니 내가 나를 위로하지 않으면 금방 무너지고 말 거야.
빠르게, 더 열심히, 갓생을 살자 같은 말들이 나를 채찍질할 때, 자기 위안은 잠깐 숨 쉴 틈을 주는 소중한 쉼터다.
사람들은 모두 실수를 하고, 좌절을 겪고, 계획만 세운 채 멈출 때가 있다. 나도 다르지 않다. ‘내일부터 진짜 열심히 할 거야.’라는 다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마다 작은 위안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비록 완벽하지 않더라도, 다시 시도할 힘을 주었으니까.
하지만 자기 위안에는 함정도 있다.
위로는 우리를 다독여 주지만, 때로는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계획을 세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해.
이런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야. 괜찮아.
맞는 말일 수 있지만, 거기에 오래 머물다 보면 현실과 점점 멀어진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나는 그저 마음만 편해진다. 그러다 보면 머릿속으로는 내가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작은 위안이 어느새 질퍽한 늪이 되어 발목을 붙잡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정말 쉬어야 할 때일까, 아니면 단지 미루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편이 조금 아프다.
다시 책상 위 스티커를 떠올렸다.
잘 해왔고, 잘 하고 있고, 잘 할 거야.
그 문장을 곱씹으며 깨달았다.
그 문장은 위로하면서도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라고 독려하는 메시지였다. 위안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말.
그 글을 볼 때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위안은 쉼터다.
하지만 쉼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쉬었으면 다시 일어나야 한다. 다이어트를 내일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 내일이 매일 반복된다면 문제가 된다.
오늘을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작은 한 걸음이라도 말이다.
누군가 나를 위로해 주는 따뜻한 말이 있든 없든, 스스로 나를 위로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만, 그 위안이 나를 다시 일으킬 힘으로 변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가끔 마음속으로 나 자신에게 말한다.
괜찮아,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나중에는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 소리를 가진 말로 만들어볼 것이다.
어쨌든, 속으로 조용히 읊조린 말도 나를 위로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준다.
하지만 그 말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기로 했다.
작은 위안이 나를 붙잡는 족쇄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연료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매일 한 걸음씩, 천천히라도 걸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