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진심

by 리타

나는 감정을 요란하게 표현하는 걸 잘 못한다. 좋아도, 고마워도, 반가워도 그 마음을 어떻게 꺼내 보여야 할지 몰라 입안에서 말이 맴돌다가 사라질 때가 많다. 어떻게 말해도 지나치게 꾸며진 말 같아서, 나답게 표현하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결국 지나치게 담백하게 표현하게 된다. 그 마음이 작지 않은데도, 오히려 커서 조심스러워지는 쪽에 가깝다.


예전에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단기 학업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며, 학교에서 나를 추천하셨다고 하셨다. 6개월 정도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나는 미국에 가보고 싶었고, 이런 제안을 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너무 놀랍고 기뻐서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겨우, "감사합니다. 가고 싶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안에서는 온갖 감정이 넘쳐흘렀는데, 겉으로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며칠 뒤, 그 기회는 다른 학생에게로 넘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대외적으로는 해당 대학교에서 나이가 더 어린 친구를 선호한다는 이유였다. 새로 추천된 학생은 나보다 두 살 어린 친구였다. 내가 그렇게 '나이가 많나?'라는 의문도 생겼지만, 학교에서 뚜렷한 설명은 없었다. 그런데 교감 선생님이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 마음에 걸렸다. 당시 내가 추천 대상이라는 말을 들을 때의 표정이 '그렇게 기뻐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 한마디에 나는 내 감정표현이 그렇게 서툴렀나 하는 자책이 들었다. 물론 나이 차이나 다른 이유들도 있었겠지만, 결국 내 감정 표현의 부족함이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정말 가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닿지 못했던 일이었다. 억울했고, 아쉬웠고, 내가 너무 무던했나 스스로를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조용히 건넨 나의 마음을 알아준 경험도 있다. 같은 동네에서 자취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의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고, 우연히 학교 가는 길이 겹치고, 자주 가는 카페도 같아서 자연스럽게 공부를 같이 하게 된 사이였다. 친구는 나와 전공도 달랐고, 원래 친하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편입을 준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신앙을 강조하는 학교 분위기나 공동체적인 특성이 친구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고 했다. 많은 친구들과 교수님들이 말렸지만, 친구는 단호했다. 본인의 선택에 확신이 있었고, 편입 준비를 병행하며 바쁘게 지냈다.


나는 그 친구를 응원하고 싶었다. 편입을 결정한 이후 친구의 눈빛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준비하는 길에 확신이 있는 친구가 그 바람을 꼭 이뤘으면 했다. 그래서 더 자주 카페에 함께 가 공부를 하고, 편입 자료를 같이 찾아보고,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자주 물어봤다. 사실 내 기억 속엔 내가 그렇게 자주 질문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친구가 나중에 말했다. 내가 관심을 가져주고, 자주 물어봐 준 게 정말 힘이 됐다고. 내가 자신의 준비 과정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해 줬다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고마웠다. 내가 진심으로 응원했던 마음이 친구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이 놀랍고 참 감사했다.


회사에서도 여러 일이 있었다. 나의 사수는 나를 정말 많이 챙겨주신다. 혼자 사는 걸 아시고는 가끔 간식도 챙겨주시고 내가 바빠서 정신없을 땐 일적으로 슬쩍 도와주시기도 한다. 나는 그런 배려가 늘 감사해서 뭔가 보답하고 싶다. 말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해도 마음에선 늘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 커피를 사드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커피 하나를 사는 일도 내게는 작은 고민의 연속이다. 사수님 오늘 주요 일정이 외근이었나? 이미 커피 드셨을 수도 있는데? 아침부터 아이스를 드리는 게 실례는 아닐까? 다른 분들도 계시는데 사수님만 드리면 괜히 눈치 보이시진 않을까? 그럼 다 같이 사드려야 하나? 그런데 다들 취향이 다르신데? 오늘 몇 명이 출근했지? 휴무이신 분들은 다음에 사드려야 하나? 신입인데 괜히 선배님들 부담 주는 건 아닐까? …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돌다 보면 결국은 이렇게 결론이 난다. "다음에 하자. 좀 더 괜찮은 기회가 생기면."


하지만 그런 기회는 생각보다 잘 오지 않는다. 다 같이 카페를 가도 서로 계산하겠다고 카드 내미는 실랑이가 벌어지면 나는 한 발 물러난다. 그 상황 자체가 너무 민망해서. 결국 내가 선택한 방식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사서 자리에 놓고 오는 일이다. 그것도 전날 밤부터 엄청 고민하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 동선을 생각해서 준비한 행동이다. 내 방식의 표현은 늘 이런 식이다. 눈에 띄지 않게, 덜 민망하게.


매일 점심을 함께 먹는 분들도 계신다. 대부분 연차가 있는 분들이고, 나는 막내다. 그분들은 내가 뭐 먹고 싶은지 자주 물어봐 주신다. 나는 그게 정말 감사하다. 그래서 내가 메뉴를 고를 기회가 오면, 되도록 그분들이 좋아하지 않는 메뉴는 피하려 한다.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그분들이 오늘 뭘 드시고 싶어 할 까 고민해서 결정을 내린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만 배려다. 고맙다는 말을 굳이 반복하지 않아도, 나의 선택에 그런 마음을 담는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열해 보니 나의 어설픔이 더 크게 느껴진다. 표현이 서툴고, 민망해하고, 고민이 많다. 하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어색한 말보다는 고민해서 준비한 행동, 눈에 띄지 않게 배려하는 작은 선택들, 아무렇지 않은 듯 놓고 오는 커피 한 잔 같은 방식으로 전할뿐이다. 그게 내 방식이다.


항상 어설펐지만, 늘 진심이었다. 앞으로도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대로인 나를 알기에. 표현이 크지 않아도, 요란하지 않아도, 조용히 전해지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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