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빨리 한국인이 되고 싶었다. 어디 가서 누군가에게 "혹시 한국사람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기 싫었다. 한국사람이 아니냐는 이 질문은 대상을 한국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정말 맞는지 확인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한국사람이 아니죠?"라는 뉘앙스의 질문과 같았다. 한국에 온 후 2-3년 될 때까지는 택시를 타거나 보건소에 가거나 은행에 가면 "어디서 오셨어요?" 혹은 "조선족이신가요?"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가끔 있었다. 질문을 받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 질문에 대답을 하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련된 설명이 길어지는 것이 가장 귀찮았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번거로워서 한국사람이 맞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간단히 답하면, 어투가 다르다며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이 뒤따랐고, 아니라고 답하면 어느 국가에서 왔냐, 외국인이냐 등의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대답하는 횟수가 한 번에서 끊이지 않고 나의 뿌리와 존재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나를 서서히 지치게 했다.
심리학 용어인 '걸맞추기 원리'에 따르면, 사람들은 보통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한다. 태도나 가치관, 종교, 문화, 연령, 사회 계층 등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에 더 편안함을 느낀다. 때문에 걸맞추기 원리는 '유사효과' 혹은 '유사성의 원리'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원리는 커플의 관계에서 흔히 나타난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탈북민의 적응 과정에도 걸맞추기 원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데이트 상대를 찾거나 결혼 상대를 고를 때 외모나 가치관이 자신과 유사한 사람을 고른다고 한다. 탈북민의 경우에는 접근방식에 있어서 관점의 차이가 있다.
탈북민은 적응을 필요로 한다. 이미 정해지고 다져진 무언가에 탈북민 자신을 맞춰야 한다. 그러려면 그 무언가를 자신에게 맞게 바꾸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변해 그것에 맞춰지는 것이 빠르고 쉽다. 변화하고 적응하는 과정에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만, 많은 것이 필요 없기도 하다. 새로운 상식과 문화, 생활양식을 배우게 되지만 그 대가로 기존의 기억이나 가치, 삶의 방식들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고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것이 더 이상 새롭지 않게 되고 자연스러워진다.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자신의 사고와 태도, 행동을 수정하고 변화시켜 한국 사회에 적응한다. 다른 말로, 북한에서 온 사람이 한국에 사는 사람과 유사해지려 하는 그 과정이 탈북민이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국사람들과 비슷해지고 유사해지기 위해서, 궁극적으로 함께 어울리고 살아가기 위해서 탈북민은 자신을 갈고닦아 한국사회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 걸맞추기 원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 자신과 태도나 가치, 문화 등에서 유사한 사람을 찾아 어울리려 하는 것인데, 탈북민의 정착초기에는 한국에 탈북민 자신과 유사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유사한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먼저 누군가와 유사해져야 한다. 물론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탈북민들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라도 한국사회 적응에 집중하는 시간은 필요하고, 전반적인 사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바탕이 되었을 때에야 독립적으로 설 수 있게 된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신다. 하지만 처음부터 아메리카노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운 티 종류를 더 좋아했는데 사람들과 카페를 갈 때마다 나만 그들과 다른 종류의 음료를 시키는 것이 어색했다. 간단하고 쉽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하고 빠르게 주문하는 사람들이 괜히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다음엔 나도 저걸 시켜봐야지라고 생각했다가 기회가 왔을 때 도전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첫 도전이 따뜻한 아메리카노였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썼다. 쓰고 알싸하고 시큼했다. 맛없었다. 같은 메뉴를 시킨 앞사람은 표정변화 하나 없이 태연하게 호로록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그날 커피는 몇 모금 마시지도 못한 채 커피잔에 입만 뗐다 붙이기를 반복하고, 거의 그대로 반납했다. 일행은 다음에는 아이스로 마셔보면 덜 쓸 거라고 조언해 주었다. 결국 나는 다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바꿔보았고 그렇게 조금씩 아메리카노의 쓴 맛에 빠져들게 되었다. 나중에 공부를 하면서 피곤하니 자연스럽게 아메리카노와 더 친해졌지만 어쨌든 커피의 처음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기 위해서 시작했던 것이다. 아메리카노는 이제 나에게 더 이상 다른 사람들 따라 마시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해서 마시는 커피이다.
나의 한국 정착은 커피 마시기와 비슷했다. 다른 사람들의 방식을 따라 하고 모방하는 것으로 한국에서의 나의 삶이 시작되었다. 모르는 것 투성이기에 곁눈질로, 또는 대놓고 타인들의 방식을 따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다. 일상의 모든 행동 과정을 설명하는 책 같은 것도 없다. 때문에 기회가 될 때마다 직접 부딪치면서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을 관찰하고 비슷하게 따라 했다.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등 영상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초반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따라 하다가 원리나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것은 쉬웠다. 취향이나 욕구도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취향을 나도 따라 해 보았다. 그러다 나랑 맞지 않으면 그만두었다. 어떤 유명한 브랜드의 향수를 선물받고 싶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 브랜드의 향수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받아놓고는 정작 쓰지도 않아 내가 원하지 않는 향수나 화장품이 집 구석구석에 쌓이곤 한다. 어쩌다 가끔 찾아 쓰기도 하지만, 한 두 번 쓰고는 어디에 둔지도 잊어버린다. 그렇게 모르면서도 아는 척, 이해한 척, 능숙한 척하고, 한편으로는 인터넷과 사람과 매체를 통해 검색하고, 공부하고, 따라 하면서 한동안 생활했다. 지금도 여전히 내가 아직 모르고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걸맞추기는 단순히 이해하고 비슷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인과 탈북민을 넘어 사람과 사람이, 세계와 세계와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함께 어울리며 같이 살아가는 데까지 이어진다. 서로 다르지만 그 속에서 비슷한 점을 찾아 소통하고 이해하려 한다. 다른 문화와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더 풍부한 시각을 얻게 된다. 결국 탈북민에게 한국 정착은, 자신과 비슷하지만 너무도 다른 타인에게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타인의 세계와 통합할지에 대한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탈북민도, 탈북민이 아닌 사람도 걸맞추기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고 자신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