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아닌 자산이 주는 안정감
사회 초년생이 되기 전부터 사귀었던 남자친구와는 스물아홉 살 지독한 사춘기 끝에 헤어졌다. 계획적이었던 그의 결혼 마지노선 날짜에 나는 결국 따라가지 못했다. 어렴풋이 예상했던 이별이었음에도 아픔은 꽤 오래갔다. 아팠고, 아렸고, 꽤 외로웠다. 서른 살의 나는 스물아홉 살의 나보다 별다른 게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거울 속 내 모습은 그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남자 동기들밖에 없었던 남초 회사에서 진급하지 못한 열등쟁이 투덜이, 그것이 나의 민낯이었다.
전 남자친구에게 의지했던 마음을 어찌할지 몰라 주변 사람으로, 대인관계로, 친구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만나면 기 빨리게 놀았고 밤새도록 술도 마셨다. 소개팅도 사람도 가볍게 만났으면 했지만 나는 늘 먼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했다. 그렇게 100번이 넘는 소개팅을 하며 타인에게 의존하고, 남자친구만 생기면 안전해질 것이라는 나약함으로 살아왔다. 앞에서는 드센 여장군처럼 털털한 이미지였지만, 내 속은 주인만 기다리며 문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집안의 강아지처럼 말이다.
사실 나에게 ‘남자’는 곧 ‘집’이었다. 주변의 결혼한 사람들이나 우리 부모님은 늘 결혼할 때 집을 구해오는 것은 남자의 몫이라고 말해왔고, 나 역시 그게 당연한 순리인 줄 알았다. 4년을 만났던 전 남자친구는 내게 결혼할 때 5천만 원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나와 재테크와 재정 관리를 같이 의논했던 그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당시 나는 그와 동등한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는 것에 묘한 자부심을 느꼈고, 돈 욕심도 있었기에 그런 요구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진 않았다. 오히려 그와 함께라면 경제적인 안정감을 빨리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남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집을 가져올 남자’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내 수준으로는 평생 못 살 것 같았던 억대의 집을 대신 해올 수 있는 남자, 혹은 나와 돈을 합쳐 그 성벽을 함께 쌓아 올릴 수 있는 파트너 말이다. 사랑이라는 포장지 안에 부동산에 대한 갈망을 교묘하게 감추고 살았던 셈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를 지탱하던 그 얄팍한 관계들이 의심스럽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식한 실험을 하나 했다. 3개월 동안 그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과연 누군가 나를 찾을까?
결과는 처참했다. 먼저 연락해 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이들조차 나의 의존적인 모습에 지쳐 먼저 손 내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그동안 있지도 않은 '내 편'을 기다리며 얼마나 비굴하게 꼬리를 흔들어왔던가. 남은 남이었다. 가족도 내겐 안식처가 되지 못했다. 내가 남들에게 푸념하듯, 가족들도 내게 푸념을 늘어놓기 바빴으니까. 경제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어느새 혼자 다 감당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나는 그렇게 처절하게 혼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막 찔러보기 식으로 소개팅을 했듯, 아파트 청약을 넣기 시작했다. 혼자인 세대주는 점수가 낮으니 될 리가 없다는 마음으로 막 집어넣은 것 중 하나가 추첨제로 당첨이 되었다. 모아놓은 돈으로 잔금을 치를 수 있을까 걱정하며, 대출 빚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돈을 모았다.
집 계약서를 쓸 때부터 사람에게 의존했던 마음들은 돈에 대한 스트레스와 무지했던 부동산 지식에 대한 한탄으로 옮겨갔다. 어떻게든 되겠지보다는 어떻게든 빚을 줄일 방법을 생각했다. 계약금을 넣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 그 외로웠던 마음에 목표가 생겼다. 저 집에서 내가 혼자 어떻게 살지를 상상하며, 적어도 이제 전세 사기와 이사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모처럼의 안정감을 주었다.
놀라운 건, 집 계약서를 손에 쥐는 순간 그토록 목멨던 소개팅도 딱 끊게 되었다는 점이다. 남자가 내 인생의 집인 줄 알고 살았는데, 진짜 내 집이 생기고 나니 더 이상 남자가 필요 없어졌다. 내가 원한 건 사랑이 아니라 내 몸 뉘일 단단한 성벽이었다는 걸, 계약서 도장을 찍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사람에게 듣지 못한 이야기들은 책을 통해 위로받았다. 듣기 싫은 잔소리 같은 책은 그냥 덮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을 수 있는 친구를 현실에서 찾기는 어려웠지만 책은 쉬웠다. 해외 작가의 책을 읽으면 외국인 친구를 사귄 것 같았고, 놀랍게도 100년 전에 죽은 작가와도 꽤 깊은 우정을 쌓았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모으고, 적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나는 어느새 혼자 지내도 참 잘 지내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서도 잘 지내다 보니 조급해지지 않는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게는 도서관에 100명이 넘는 친구가 있다고 자부했다. 집 계약을 한 뒤 3년 뒤에 내가 가질 집에 가득 채울 나의 책 친구들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아직 빚이지만, 그래도 내 인생은 이미 꽉 찬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나의 성벽을 만들어 그 안에서 안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