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 글쓰기, 그냥 쓰는 거지
언젠가부터 합평을 할 때면, 주눅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이다, 좋은 자극을 받으며 즐겁게 써야지 하며 글쓰기 강좌를 신청했다. 사설 강좌지만 그럼에도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운다는 게 설렜다. 막 소설에 발을 담갔을 땐 즐거웠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낮았다.
에세이든 소설이든, 머무는 시간이 쌓이면서 욕심도 커졌다. 잘 쓰고 싶다.
이전에 썼던 내 글을 다시 읽기가 힘들었다. 서유미 작가님은 그런 비위를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차마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결점투성이 같았으니까.
좋은 글을 읽으면, 재밌고 참신한 소설을 보면 이제 재밌기보다는 좌절도 느꼈다.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이 재능(정용준 작가님)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을 비슷한 온도로 이어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해낸 것 같은, 자기 세계를 서서히 넓혀가는 작가들이 존경스러웠다. 혹은 원체 뜨거워 재능이 뿜어져 흘러넘치는 작가들도 부러웠다. 무엇보다 동시대의 젊은 작가들을 선망했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합평을 할 때 주눅이 들었다.
습작생들의 옷차림에서 보이는 개성에도, 대화 속에 언뜻 비치는 취향에도 우와! 하면서도 샘이 났던 것 같다.
'합평에서는 틀려도 괜찮다. 그저 내가 글을 읽고 느낀 걸 말하면 된다.'라며 작가들이 문을 연다.
그렇지만 뭔가 정답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같은 생각도 특별하게 표현해야 할 것 같았다.
나만 다르게 생각했으면 어떡하지, 내가 오독했거나 이해 수준이 얕다는 걸 들키기도 싫었다.
내 글도 결점투성이인데 괜히 다른 이의 결점까지 파낼 필요 있나, 하며 두루뭉술하게 좋은 점만 이야기하곤 했다. 아무도 내게 그러라고 시킨 적은 없지만 그런 태도를 취했다.
오해의 가능성을 떠안고 너를 이해해 볼게
합평 도중 김성중 작가님이 했던 말이다.
나 역시 너를 이해하겠다는 말보다, 더 진심으로 들렸다. 틀려도 괜찮고, 오독해도 괜찮다고. 무슨 말이든 해주는 게 그만큼 더 열심히 읽었다는 의미였다.
상처 줄 수도 있어. 그래도 너를 사랑해 볼게.
로 바꿔보면 어떨까?
오해하기도 받기도 싫어서 그만큼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상처를 주고받기도 싫어서 그 구태의연한 과정이 싫어서 시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지만 시작해 보겠다는 다짐. 그런 결의가 느껴졌다.
그 마음을 품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로 이해한 걸 말할 수 있겠다, 란 용기가 생겼다.
여전히 글을 쓴다.
늘 즐겁지는 않다. 여전히 혼자 압박을 한다.
글을 공개할 때, 무대에 불이 켜지고 관객 앞에 처음 등장해 마주 보는 것처럼 떨린다.
그렇지만 나를 덜 쪼기로 했다.
쓰지 않고 생각만 굴리면 점차 거창해진다. 쓸데없이 비장해진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했다. 쓰면 별거 아니니까. 그냥 하는 것임을.
뭔가 되려고, 뭘 하려고 보다는, 내 첫 마음.
즐거워서 썼던 마음을 기억하면서 기쁨과 붙잡고 가겠다.
(쓰다 보니 비장해졌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