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이란 창작자의 창작력을 극대화할 수도 있지만, 포기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유튜브 채널 <요정 식탁>에 박정민 배우가 나왔다. 중간에 정민 배우가 문학동네의 시 뉴스레터의 필진으로 참여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탁에 응하고 2주 만에 후회했다며 ‘마감’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했다. “마감이 포기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고, 잠시 화면을 멈추었다. 지금 듣고 싶은 말이었다.
“다음 합평 때는 각자 지금까지 써온 소설을 고쳐오기로 해요.” 먼저 제안한 건 나였다. 작년 여름에 소설 강좌에서 만난 문우들과 3주에 한 번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신춘 문예에 완성한 소설을 투고해 보자고, 되든 안 되든 도전에 의의를 두자고 말했다. 결국 포기했다. 완성하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실망도 했다. 일터에 치여서 쓸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었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다. 그보다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어디로도 못 가게 했다.
처음 단편소설(A4용지 10쪽 분량)을 완성했을 땐, 일단 분량을 채운 데에 감격했다. 모르니까 쓰는 과정이 재밌었다. 종이 인형을 가지고 혼자 뚝딱뚝딱 노는 것 같았다. 마음대로 세계를 그린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점차 좋은 소설을 읽고, 아는 게 생기면서 한 줄 한 줄 쓰는 게 어려웠다. 생각하고 고려하는 게 많아지면서 검열하는 나도 자라났다.
마감이 다가오면 괜스레 집안일하고 유튜브를 뒤적인다. 시험 기간만 되면 다큐멘터리도 새삼 재밌게 느껴져서 텔레비전 앞을 서성이던 학창 시절 모습처럼. 쓰는 건 시험이 아닌데. 좋아서 하는 건데도. 잘하고 싶었다. 그러면 노트북 앞에 앉아야 하는데 자꾸 유튜브 쇼츠로 눈길이 갔다. 그러고 나면 불쾌하고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악순환. 쓰고 있는 동안에는 내 글을 믿어야 하는데, 자꾸 의심이 올라온다.
응모하지 않기로 했다. 깔끔하게 포기를 하니, 한편으로 편안하다. 내 푸념을 듣고 친한 동생이 “불씨가 안 꺼지게 간직하면 되지.”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다시 위로를 얻었다. 작가적 자아도, 일터의 자아도, 일상의 자아도 자라고 있다. 그 틈에서 ‘쓰고 싶은 마음’도 부디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쓰는 즐거움을 초콜릿 까먹듯 자주자주 꺼내봐야겠다. 지난 주말에는 책장을 뒤엎고 방을 싹 정리했다. 한결 깔끔해진 책장을 보며 오랜만에 소설집 하나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