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 한국 소설가 3명이 모인 북토크에 갔다. 작가들은 작품을 구상하는 방법, 쓰면서 하는 고민, 퇴고할 때의 마음가짐 등을 얘기했다. 내가 소설 쓰기에 막 발을 담갔던 시기였다. 양념의 비법을 알고 싶어 명인의 가게를 찾아가는 마음으로 작가의 이야기를 놓칠세라 공책에 적었다.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었냐는, 당신의 재능이 탐나요. 부류의 질문이었다. 정용준 작가는 “쓰고 싶은 마음이 재능인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자신도 한 때 동료 소설가의 작업 스타일을 궁금했다고 털어놓았다. “모두 다르게 쓰기에 특별한 매뉴얼은 없었습니다. 상상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아이디어에 달려있지도 않았어요. 경험이 많다고 소설을 잘 쓰는가를 묻는다면 반/반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쓰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아요. 소설이란 쓰고 싶은 마음이 특정한 상황과 장면을 끌어오는 일 같습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재능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성실하게 반복하고 노력하는 건 지루하게 들렸다. 반짝이는 재치, 압도하는 능력이 더 근사해 보였다.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비범하다. 같이 시작해도 남들보다 빠르게 타고난 실력으로 뚝딱 이룬다.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초롱초롱하게 말하던 장금이도, 시장통에서 멋들어지게 창을 부르는 정년이도 그랬으니까. 글쓰기 속도는 모두 다르다. 시작점부터도 가지각색이다. 누군가는 빠르게 습득했다. 비교는 의미 없지, 내 길을 가야지 다독이다가도 또 주위를 둘러보곤 했다.
이제는 안다. 꾸준히 하는 게 더 멋지다는 걸. 찰나의 발광하고 꺼지는 불빛이 아니라 오래 온기를 품고 있는 따뜻함이 내가 찾는 빛이라는 걸. 한편으로는 꾸준함이야말로 재능이 아닌가 싶었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꾸준히 쓰지 않으니까. 또 내 재능에 실망할 찰나, “쓰고 싶은 마음”이라는 대답은 다시금 나를 불러 세운다.
쓰는 게 즐겁지만은 않다. 마감이 다가올 때마다 흰머리가 하나둘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쓰려고 한다. 어쨌든 완성해서 마침표를 찍었을 때, 후련한 감각을 기억한다. 엉킨 생각을 정리하고, 뿌연 이미지가 점차 선명해지는 기쁨도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문장을 만나는 희열도 있다. 글을 나눌 땐 무대에 서 독백하는 배우가 된 것마냥 쑥스럽지만, 무대 위로 자꾸 서고 싶다. 작가의 의도보다 더 풍성하게 읽어주는 독자의 평을 들을 때면 발끝에서부터 뜨거운 게 차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쓰다 보니 같은 마음을 품는 사람들을 만났다. 서로의 글을 읽어주는 문우들은 ‘쓰고 싶은 마음’에 화력을 더한다. 시작점이 달라 더 다채롭다. 다들 글 재능을 품고 각자의 마침표를 향해 나아가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재능이 또 새로운 이야기를 끌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