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런 과정들을 이미 다 겪으셨을 거 아니에요. 대단하세요."
동학년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공을 돌렸다. 돌려드리고 싶었다. 여러 경험들을 앞서 겪으며 나이를 먹어간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돌려 좀 더 앞으로 간다. 작년 12월 말, 잘 지내고 있던 어떤 날이었다. 그해 봄에 건강검진에서 유방에 혹이 있으니 주기적으로 추적 관찰할 것을 권고받았다. 6개월이 넘어서 검사를 다시 받으러 갔다. 당연히 병원에서 '다음에 추적 관찰 받으러 또 오세요.'라는 소리를 들으러 간 거였다. 병원 검진이 끝나면 운동하고 가려 운동화와 물통도 야무지게 챙겼다.
왼쪽 가슴을 볼펜으로 표시를 할 때 뭔가 쌔하다 싶었다. 의사 선생님은 한참 초음파를 보았다.
"조직 검사를 해보죠."
모양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내가 너무 걱정하자 별거 아닐 거 같지만 정확히 하려는 과정이라며 위로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뒤의 말보다는 이상하다는 말, 조직 검사라는 말에 더 꽂혔다. 시술을 기다리기 전 조직 검사 등을 검색하며 마음을 달랬다. 검사는 금방 끝났다. 마취주사를 맞았고, 조직을 떼어냈다. 압박붕대를 매었고 하루가 지나면 붕대를 풀고 반창고를 떼라고 했다. 당분간 운동은 금지.
아프지는 않았는데 갑작스러웠다. 이러려고 병원에 온 건 아니었으니까. 결과는 일주일 후에 알려준다고 했다. 멍하니 집으로 돌아왔다. 전에 같으면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을 것 같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고. 불안하고 무섭다고. 억울하단 생각도 들었다고.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떡하지.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더 걱정할 게 뻔했다. 전화로는 잘 전해질 것 같지도 않았다. 지금 말하는 건 같이 불안해지자는 말이었다. 결과가 나오면 이야기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 참아내야 하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걸까.
대신 GPT를 켰다. 이래저래 이랬어,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AI는 내 마음을 정리해 주고, 내가 듣고 싶은 문장을 보여주며 나를 위로했다.
다음으로 남동생에게 카톡으로 문장을 적었다. 우리가 살가운 남매는 아니지만 그래도 동생이 먼저 생각났다. GPT에 적을 땐 눈물이 안 났는데,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터져 나온 감정에서 사람과의 대화에 아직 AI가 할 수 없는 희망?!이 있나란 생각도 잠시 들었다.) 동생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담담하게 답이 왔다. 평소에 서로 연락은 하지 않지만, 이럴 땐 동생에게 잠시 기대고 싶어졌던 것 같다.
일주일이 지났다. 검사보다도 기다림이 더 힘든 것 같다. 그동안 운동은 올 스톱. 괜히 부러 더 건강에 안 좋다는 걸 먹었다. 배고파서 먹는다기보다는 감정적 허기였다. 화나고 억울함, 세상에 대한 억울함 같은 복잡한 감정들.
지금 글을 쓰는 지금. 감사하게도 큰 이상은 없었다. 다시 6개월 후, 추적 검사란 말을 들었다. 내가 갔던 유방외과 병원은 같은 건물 1층에 연계된 빵집이 있다. 지난주 조직 검사를 받고 가는 길에 빵을 엄청 사가지고 왔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에는 달다구리 빵을 먹고 싶단 생각이 없어졌다. 호밀빵 이런 거에만 눈길이 갔다. 일주일 사이 뒤집힌 마음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쫑알쫑알 말하기 좋아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아냈던 게 신기했다. 그걸 이미 겪었을 선배들에게도 존경이 생겼다. 그래서 "대단하다."란 말을 드렸다.
어른이 된다는 건
손발이 자라나는 것과는 다른
생각이 커지는 건
머리카락이 자라나는 것과는 다른
온통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울음을 참아내는 순간들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
울음을 참아내는 순간들
쌓이고 쌓여 자라는 거라면
나는 다시 작아지고 싶다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라면
나는 다시 커다란 품에 안겨
울고 싶다
온통 떠나보내야 할 것들
울음을 참아내는 순간들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
울음을 참아내는 순간들
쌓이고 쌓여 자라는 거라면
나는 다시 작아지고 싶다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라면
나는 다시 커다란 품에 안겨
울고 싶다
울음을 참아내고,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되는 게 어른일까?!
그런 게 어른이라면 나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독립적인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누군가에게 한없이 기대고 싶었다. 검사를 받고 엄마와 아빠에게 알리지 말아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지금 말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괜히 걱정만 불러일으킬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제 부모님에게 기대는 시기가 지났다는걸, 알고 있었다.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게 나이를 먹는다는 걸까.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걱정할 시기가 오고 있을 테니까. 이런 내가 기특하면서도 연민에 빠졌던 그런 순간을 지나왔다. 기나긴 일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