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산책
집 근처에 도서관이 생겼다! 걸어서 십분 남짓 거리에 교육청 산하 도서관이 문을 연 것이다. 시립도서관보다는 일찍 닫지만 주말에도 이용할 수 있다. 창문이 커서 햇빛도 잘 들어오고 건물도 예쁘다. 우리 집이 도세권이 되다니! 집 계약 만기가 다가와서야 이 동네에 애정이 커졌다.
햇살을 머금은 책 때문인가. 어떤 책을 읽을까 가만히 구경하고 거니는 게 산책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어떤 생선을 건져 올릴까. 어떤 열매를 맛볼까 하는 마음일까? 어부도 농부도 경험해 보지 않아서 그 마음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행자의 마음인가?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싶은 기대에 부푼 마음. 문학에서 철학, 역사, 종교, 사회과학, 자연과학, 동화, 언어... 목록을 이정표 삼아 걸었다.
유튜브가 떠올랐다. 아이패드 화면을 터치하면 나는 알고리즘에 뜨는 대로 따라갔다. 지금도 몇 초 단위로 새로운 콘텐츠가 생겨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방대한 것들이 그 화면 속에 있다. 알고리즘은 내 입맛을 파악해 계속해서 새로운 걸 건져 올린다.
이 도서관에는 세상의 모든 책이 없다. 그것이 이 공간의 한계다. 나는 그 명확한 한계가 좋다. 알고리즘이 아닌 내 발로 진열된 책을 보러 다닌다. 제목, 작가, 출판사, 표지, 디자인을 보고 한 권, 두 권을 건져 올린다. 도서관에 앉아 몇 장을 쭉 읽어본다. 그러다 마음에 들면 집으로 가져온다.
책 속에 마음에 드는 문장에는 포스트잇을 붙였다. 때로는 공책에, 혹은 노트북에 문장을 옮겨 적었다. 그러다 보면 가져온 책이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이 책을 소유하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책에 밑줄을 긋는 행위는 작가와 악수하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진짜 내 책이 되자, 악수를 실컷 했다. 한쪽 구석에 메모를 남기고 귀퉁이를 접었다. 그렇게 온전히 내 것이 된 책은 우리 집 책장에 들어갔다.
그런데 왜인지 더 이상 각별하지 않은 느낌이 들지? 소유하고 나니 간절하지 않은 건가?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을 때, 아직 가지지 못하고 유보된 책이 더 설레는 건가. 가능성을 가지고 훼손하면 안 되는 그 무엇이기에 더 소중한 건가. 관계가 익숙해지고 친밀해져서 더 이상 이전의 설렘을 느끼지 않는 그런 만남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관계의 종류가 달라지고 더 깊어졌겠지. 인연처럼 책도 흐르는 거지. 그렇게 답하면 되는 건가.
우리 집, 내 책장에 있는 책은 언제든 꺼내볼 수 있기에 오히려 더 멀어진 느낌이었다. 마음에 들었기에, 언제든 꺼내보려고 산 건데 말이다. 그래서 내 것이 되었는데 말이다.
다시 도서관으로 간다. 책을 고른다. 또 마음에 혹하는 책이 생겼다.
아마 또 꺼내와서 집으로 가져와 몇 주간 머금을 것이다. 그리고 소유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 과정을 통과한 책과 여러 번 악수를 할 테고, 여기저기 전시를 하다가 내 책장 한편에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