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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 Mar 05. 2023

취향을 파는 상점

브런치 첫 글, 무엇을 팔고 싶은가요?

예전에 각 분야의 능력자들을 소개해주던 예능프로그램이 있었다. 버스 덕후로 나왔던 사람이 엔진소리만 들어도 무슨 기종인지 알아채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러시아로 수출한 우리나라 옛날 버스를 조사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나중에는 버스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하며 그의 표정이 반짝였다.      


나는 금사빠이자, 금사식이다. 무언가에 매력을 발견하면 푹 빠져서 돌진한다. 하지만 오래가는 것은 많지 않다. 다른 재밌는 대상을 찾으면 그것에 빠졌다가 또 금방 나오곤 했다. 그래서 하나를 깊게, 꾸준하게 파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5년 전, 지방에서 근무하는 친한 동생 현경이 서울에 놀러 왔다. 우리는 대학로에서 공연을 보고 밥을 먹었다. 동생에게 소화도 시킬 겸 낙산공원을 가보자고 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멋진 노을과 밤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낙산공원 성곽길을 좋아했다. 낙산은 조금만 올라가도 남산타워를 비롯한 시내가 다 내려다보인다. 고요한 정상에서 북적이는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건 꽤 운치 있었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 옛사람이 된 느낌도 들었다. 현경이와 나는 성곽과 밤하늘의 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낙산공원 성곽길 :)


언덕길을 내려가며 다시 거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두운 골목길에 주황색 조명이 눈길을 끌었다. 간판은 없고, 대신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올라갈 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가게였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른쪽 벽에는 에코백부터 시작해 손수건, 시계, 찻잔 같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있었고 가게 안쪽으로는 귀걸이, 머리핀 같은 액세서리가 보였다. 색깔과 디자인은 달랐지만 모두 고양이가 그려진 소품들이었다. 가운데 탁자에는 공책, 달력, 엽서를 비롯해 다양한 필기도구들이 있었다. 주인공은 역시 고양이였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만화책,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식에 관한 책, 여행길에서 만난 고양이를 그린 에세이들도 꽂혀있었다. 


이곳은 서점이라고도, 문구점이라고도, 소품 가게라고도 명명할 수 없었다. 그냥 고양이였다. 말하자면 고양이 덕후를 위한 가게였다. 똑같은 상표도 없었고 브랜드도 뚜렷하지 않았다. 주인이 하나씩 모은 것 같았다. 누군가의 취향이 담긴 공간을 구경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언니는 이런 가게를 낸다면 어떤 걸로 채우고 싶어요?” 

현경이 가게를 나오며 내게 물었다. 그 질문은 오래 남았다. 내가 끈질기게 좋아한 것이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 주제로 또는 한 단어로 묶을 수 있을까?      




한 때 나는 야구 보는 것에 빠져서, 욕을 하면서도 매일 경기를 챙겨보았었다. 신인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즐거웠다. 기아타이거즈가 8년 만에 우승했을 때, 기뻐서 다음 날 동료들한테 커피를 쐈다. 코로나 바로 전 해에는 방 탈출 카페의 맛을 알았다. 강남, 홍대, 대학로의 유명한 방 탈출 카페를 도장 깨듯 다녔다. 대학생 때는 인디밴드 노래에 꽂혀서 봄과 가을이면 페스티벌을 따라가고, 콘서트를 예매했다. 좋아하는 배우를 발견하면 관련된 영상을 수집하고, 인터뷰를 탐구하고, 드라마 대사를 외울 정도로 돌려보기도 했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 나의 취향은 그렇게 착실하게 옮겨 다녔다.      


어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가볍게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지만, 그게 덜 소중해진 것은 아니었다. 더 이상 장난감이 재미없어서 버리는 마음과는 조금 달랐다. 시간이 흘러서 우연히 내가 좋아했던 것을 다시 마주할 때면, 과거 내 모습을 떠올리며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희미했지만, 나의 취향들은 마음속 여러 방 어딘가에 차곡차곡 남아있었다.     


진득하게 머물지 않은 나였지만 일기는 참 꾸준히 썼다. 매일 밤 자기 전, 카카오에게 ‘누구누구 음악 틀어줘~’라고 말한다. 그 시간에는 일부러 잔잔하고 조곤조곤하게 부르는 노래로 선곡한다. 배에는 핫팩을 올려두고, 편한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서 일기 쓰는 걸 꽤 오래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좋아한다. 그날의 일상에 덧붙여 내 생각과 나에게 건내는 위로를 적는 것이 좋았다. 누가 시켜서 매일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아서. 내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던 고요한 그 순간들이 즐겁고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글을 좀 잘 써보고 싶었다. 나만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도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이렇게 첫 글을 쓴다.





자신의 취향이 있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확고한 취향을 갖는 것만이 정답은 아닌 것 같다. 취향은 때때로 변한다. 확고하면 확고한 대로, 열어두면 열어두는 대로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얕게 여러 애정을 갖는 것 또한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한때 내가 애정을 쏟았던 그 모든 것들이 나의 ‘힘’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내 취향과 내 몰입의 흔적을 모아 내 글이라는 ‘공간’에 담고 싶다. 희미하게 남은 그것들을 건져서 선명하고 생생하게 적어두고 싶다. 고양이가게 주인은 결국 자신의 세계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팔았다. 나 역시 나의 세계를 만들고 써서 나누고, 팔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도 호기심의 레이더를 켜고, 내 글 속에 넣을 새로운 발견을 기다리며, 모험을 떠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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