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의 힘 vs 두려움

2019년의 작업(연극치료)

by 강은

연극치료 선생님과 나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아파트 단지 속에 비밀스럽게 자리한 카페였다. 1층에서 각자 차를 시키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엔 우리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가방에서 색종이를 꺼냈다. 내게 색종이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나타내보라고 했다. 빨간색, 남색, 초록색…. 나는 종이의 색깔을 골랐다. 색종이를 구겼다가, 접어보기도 했고, 찢기도 했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하나씩 떠올렸다. 다락방 같은 그곳에서 우리의 첫 번째 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내가 느꼈던 두려움에 이름을 붙였다. 막연하게 두렵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좀 더 선명해졌다.


1) 실패 : 우리 반이 안 잡혀서, 또다시 교실붕괴를 겪을까 봐 두려웠어요.

2) 건강 악화 : 이렇게 스트레스받다가 혹시라도 몸이 상할까 두려웠어요.

3) 다른 이들의 말과 시선들 : 학생들에게, 학부모에게 외면받을까 봐 두려워요.

4) 홀로 남겨짐 : 근처에 사는 친한 친구가 곧 이사를 간다. 혼자 남겨지는 게 두려워요.

5) 틀에 사로잡힘 : 제가 어떤 완벽한 틀을, 저만의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거기에 제가 갇혀있는 게 두려웠어요.


나를 방해하는 힘, 내가 찾은 힘.jpg


이번에는 작자씨가 찾은 강점에 말이나 동작을 붙여보세요.


공원에서 내가 찾았던 힘을 구체화했다. (이전 글 : 1. 잊고 있던 나의 힘)

https://brunch.co.kr/@writer-kang/36


1) 솔직함 : 허리에 손을 두고 당당하게 바로 선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내 이름을 말했다. "나는 강작자야."

2) 공감 :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그랬구나."라고 말해보기로 했다.

3) 사랑 : 나뭇가지가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 같다고 느낀 것처럼, 허공을 끌어안으며 "사랑해"라고 말했다.

4) 부지런함 : 일어서서 달리는 동작이 떠올랐다. "가자", "나오자", "움직이자" 이런 말들이 나왔다.

5) 용기 : 적당한 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당당하게 걷는 동작을 붙였다.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의 두려움을 연기했다. 그녀는 내가 이름 붙였던 각각의 두려움에 어울리는 대사를 하고 동작을 취했다. 나는 내가 가진 강점(힘)에 붙였던 말과 행동으로 그 두려움을 물리쳐야 했다. 악당에 맞서는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역할에 몰입했다.


건강을 염려했던 두려움에 대해서는 "나가자, 움직이자!", "운동도 하고, 잘 먹고, 필요하면 병원도 가자" 며 설득했다. 친구가 떠나서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워하던 나에게는 "괜찮아. 우리는 또 자주 볼 거야. 그동안 나도 부지런하게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하고 싶은 것 하자"고 다독였다.


학교와 관련되었던 두려움(실패와 사람들에게 외면받을까 시선을 의식하던 마음)에게는 이미 용기를 가졌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을 생각했다. "다른 이들의 말을 무시해. 자기들이 해보라고 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좋을 수는 없어. 나는 최선을 다할 뿐이야. 판단은 그들의 몫이니, 너무 연연하지 마.", "미리 혼자 겁먹지 마. 실패는 늘 할 수 있어. 실패했으면 머물러 보자. 단, 자책하지는 말고." 라며 말을 이었다.


의외로 마지막에 썼던, 틀에 사로잡힐까 봐 두려웠던 마음에 대적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그리고 이 날 그 완벽주의를 완전히 이기지 못했다. 비록 틀 속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연극선생님은 내가 했던 말 중 “틀 속에 잠시 있어보자.”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틀을 꼭 다 찢어버리고, 깨야 하는 것만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당시 나는 불안해서 아이들과의 짧은 정적도 참기 힘들었다.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활동을 하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내면, 수업 준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선생님은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얻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아이들을 가만히 관찰해 보는 것도, 때때로 나도 아이들과 함께 활동을 같이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고, 떠오르지 않으면 그런대로 놓아도 괜찮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집에 와서 선생님이 말을 일기에 적었다. (선생님 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려야 했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인 숙제가 주어졌다. 바로 내 기준을 낮추기. 앞으로 목표는 “10개 도전하고, 10개 실패할 것.”이었다. 그러다 아이들과 내가 조금이라도 성취하면 “안 될 줄 알았는데, 됐네?! 대단하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과 내게 자꾸 격려를 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 달 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첫 번째 작업으로 내 힘을 발견했고, 욕구와 두려움도 들여다보았다. 사실 선생님이 연기했던 두려움은 그동안 내가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녀와 만남을 통해, “자책은 그만하고 이제 나오자고, 나는 이렇게 많은 힘을 가졌다”라고 스스로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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