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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은 Sep 12. 2023

2023년 여름들의 기록

"언니, 이제 짐도 금방 쌉니다. 이것도 반복하니 기술이 쌓였네요." 

우스갯소리로 돌아오는 길에 J 언니에게 말했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날도 선선해졌다.  


9월 4일의 하늘

1차 집회부터 그동안의 구호들을 한 번씩 외쳐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총 5번 함께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행이다는 말을 검색하면 '뜻밖의 일이 잘되어 운이 좋다'라고 나온다. 아직 구체적으로 해결된 것도 없고 그사이 비보가 더 있었는데 운이 좋다고 말하는 건 어폐가 있는 것 같다. 


작년 11월의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교사 커뮤니티에서도 힘들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아이를 남겨서 지도하는 것도, 잠깐 따로 아이를 불러내서 지도하는 것도 모두 ‘아동인권 침해’라고 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분위기였다. ‘탈출은 지능 순’, ‘조용한 사직’이라는 글도 자주 보였다. 부정적인 공기는 빠르게 전파된다. 바뀌지 않는 견고한 벽 앞에서 “우리끼리라도 이 일에 자부심을 가져봐요.”라는 말은 힘없이 겉돌았다. 내뱉었던 위로의 목소리들은 한숨을 타고 맥없이 돌아왔다. ‘우리의 일이 왜 이렇게 되었지?’ 


어느 순간 나 역시 현장의 이런 분위기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 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것들만 보였다. 교실 안에 아이들도 무언가에 지치고 눌려있는 것 같았다. 중학교 3학년을 넘어서 고등학교 수학까지 선행을 하고, 쉬는 시간에도 영어 단어를 외우고 학원 숙제를 하는 아이들. 자극적인 영상을 접하는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수업 시간은 무엇을 해도 재미없다고 말하는 심드렁한 아이들. 교실 밖을 넘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사고가 나서 민원이 생기면 안 되니까. 우리 반만 괜한 유난 떨면 안 되니까. 바닥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내 다리를 잡고 자꾸 끌어내리는 것 같았다. 

https://brunch.co.kr/@writer-kang/24 (올해 3월의 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찾다가 '시간'을 주고 싶었다. 잠시 멈추고 싶어서 올해 휴직을 신청했다. 현장에서 잠시 떨어져 있으면서 일상을 보냈고, 사람들을 만났고, 새로운 기쁨들도 경험했다. 


그리고 3월의 PD수첩, 7월의 사건들을 마주했다. 


안타깝고 슬펐고,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교사 커뮤니티 내에서 자발적인 움직임들과 행동에 감탄하기도 했고 집회를 참여하면서 더 큰 위로를 얻었다. 동료들과 서로 지치지 말자고 다독거리기도 했다. 8차까지 이어진 길어진 시간 때문인지, 내부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들로 혼란스럽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나는 쉬고 있으니까, 떨어져 있으니까, 미안했다. 말을 걸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나의 2023년의 여름이 지나고 9월이 왔다.


0. 서울시 교육청
0. 서이초
2. (2023. 7. 29.)
5. (2023. 8. 19.) 에서 받은 스티커
6. (2023. 8. 26.) (출처 : 인디스쿨)
7. (2023. 9.2.)
8.

아직 뚜렷하게 바뀐 건 없다. 다만 더 이상 혼자 아파하고 싶지않다는 것을 매회 느끼고 돌아왔다.

내 안에 남아있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려고 갔던 것도 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다. 작은 힘이 되기를. 사회자의 말을 빌려 개인, 하나의 점이 모여 선이되고 물결이 되길 바랐다. 목소리가 닿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2023년 9월 2일 여의도에 뜬 무지개 (출처 : 인디스쿨)


오랜만에 지난 3월에 쓴 글을 다시 읽었다. 그때 감히 품었던 희망을 다시 들춰본다.


https://brunch.co.kr/@writer-kang/24



5. 감히 희망을 꿈꾸며 

매해 반복되는 뽑기의 시즌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고 생각했던 나의 이기심을 보았다. 타인의 고통으로 얻은 안도는 더 큰 공포를 나았다. 언제든지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상황들에 두려웠고, 현실에 화가 났고, 무기력했다. 내 이기심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지, 시스템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침묵이 아니라,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교실 속에서 내가 할 수 없는 것도 많지만, 작지만 ‘할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교사로서 잘 지내려고 걸어왔던 내 노력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나부터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게 봐주려고 한다. 


정말 가~끔 교실 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찾아온다. 그런 순간을 위해 애쓰는 교사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자신의 교육관을 펼쳤으면 좋겠다. 


그렇게 희망을 품어본다. 올해 우리 학교에도 녹음 기능이 있는 전화기가 교실마다 설치가 되었다. 전화기가 바뀌었듯이, 사람들이 문제라고 알아차리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바뀔 수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 날개 없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 한 편에 자리하길 바래본다. 

https://brunch.co.kr/@writer-kang/24 (올해 3월의 글)



더 이상 너무 아파하시지 마시기를, 함께 하기를 바란다. 3월에 나는 날개 없이 떨어진다고 썼다. 지금의 나는 각자 모두에게 이미 날개가 있었다고 또 감히 전해본다. 



가볍게 쓰려고 했던 글이 또 어느새 무거워졌다.

어쨌든 이제 짐 꾸리기에 능숙해졌다. 전날 밤 얼려둔 생수도 언제쯤 꺼내놔야 딱 맞는 상태가 되는지 알고, 검은 상, 하의도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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