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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 Jun 17. 2021

두려운 것

 흐릿한 날씨에 마음도 흐릿해지는 하루입니다. 공허함이 자꾸만 마음을 괴롭히는 하루이기도 합니다. 규칙을 알 수 없는 감정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오랫동안 누워있었습니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2020년에 퇴사했던 저는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이면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블루라면 코로나가 한결 나아진 지금, 모든 것이 괜찮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증상은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유를 찾으려고 과거를 헤집고 있던 찰나 스쳐간 것이 있는데,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을 무서워하기도 합니다. 배신을 당할까 봐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무섭습니다. 무심코 말을 던지는 사람을, 말로 내 입을 막는 사람을, 믿지 못할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마음이 다치면 회복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퇴사한 이유도 결정적으로 '사람'이었습니다. 나날이 업무는 늘어가는데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대표의 말 한마디가 저를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일은 원래 다 하는 거야."

 저는 원래 해야 하는 일로 징징거리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으로부터 망가져보았으면서도 조심성과 배려심을 기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역지사지라는 말은 전설 속에나 나오는 말 같아요. 저에게 고민을 잘만 털어놓다가도 힘든 일을 털어놓으면 외면해버리는 사람, 힘든 일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노력을 깎아내리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 그리고 거기에 질려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으면 그걸로도 욕을 하는 사람까지.


 과거에는 말을 잘 들어주고, 위로도 잘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자신이 털어놓는 만큼 들어주고, 위로는 하지 않더라도 공감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타인에게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에 대한 편지에서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요? 제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제 이야기를 아끼고 귀를 더 여는 방법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회의감이 들어요. 큰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그러게 말이야' 하는 말과 공감을 바랄 뿐입니다. 관계의 상호작용을 바라는 것인데 그것마저 되지 않는 순간에는 말로 할 수 없는 공허함이 들어찹니다.


 좀 더 따뜻한 관계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험담하지 않아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관계. 그것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이제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겁이 납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적어도 오늘은 나아갈 용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내일은 용기가 생길까요?


 당신께 썼던 편지들을 보니 하루하루 좋고 나쁨이 확연히 나타나더군요.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쓰고 싶은 것을 쓰기 위해 시작한 편지이니 창피하더라도 끝까지 달려보겠습니다. 저의 좋고 나쁨을 늘 지켜봐 주시는 당신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좋음은 가져가시고 나쁨은 저와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의 감정으로 다시 편지하겠습니다. 부디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랄게요.


21.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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