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급이 적어도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가계부를 쓰는 이유

by 리버







꼬박 6년을 다닌 대학교를 졸업한 후, 우여곡절 끝에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이름난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업계 1, 2위를 다투는 안정적인 회사였고 연봉 조건도 괜찮았기에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첫 월급을 받을 무렵, 설레는 마음에 월급관리 책을 한 권 샀다. 그 책에서는 사회초년생 때 월급의 60%는 저축해야 한다고 했다. 목돈이 필요한 행사가 줄줄이 남아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저축 비율은 줄어들 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자취 생활을 하면서 그만큼 저축하기에 내 월급은 턱없이 모자랐다. 당시 집에서 숨만 쉬어도 나가는 월세 및 공과금이 약 50만 원, 회사를 다니면서 나가는 핸드폰 요금과 교통비, 점심값이 30만 원 정도였다. 자잘한 식비, 의복비를 최대한 줄이고 월급의 반 정도인 100만 원씩 적금을 부으면 1년간 모을 수 있는 돈이 최대 1,200만 원. 경조사비, 병원비, 교육비 등을 고려했을 때 실제로 모을 수 있는 금액은 그보다 적으리라.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그렇게 저축해도 서른 살은 되어야 간신히 전세보증금을 대출받을 수 있는 액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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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내 연봉이 껑충 뛸 거라는 가능성만 믿고 가야 하나? 한 번 초봉이 정해지면 두고두고 연봉 올리기가 힘들다던데. 지금이라도 다시 대기업 입사를 노려야 하나? 학교에 다니면서 모아뒀던 돈도 이제 바닥이 보이는데, 언제 끝날지 모를 취업 준비 기간을 내가 또 견딜 수 있을까…. 아, 어찌 되었든 이대로라면 흔히들 말하는 '크게 어려움 없는 삶'은 내겐 영영 어려울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나는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에 그 책을 꾸역꾸역 끝까지 읽었고(그때만 해도 월 수입이 200만 원 남짓인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월급관리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해볼 수 있는 내용을 추려서 실천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통장을 나누고 적금을 들고, 매일같이 가계부를 쓰고 지출 내역을 들여다보며 1년 동안 어찌어찌 1,000만 원 하고도 얼마인가를 더 모았다. 이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이 돈은 내 삶의 황금기 중 하나였던 재취업 준비기를 지낼 자금이 되었다.



하루의 마지막을 함께한 가계부에
빼곡히 적힌 목록에는
내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취미를 어떻게 새로운 능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던 저녁 시간들, 회사 생활이 힘들어져 매일같이 술로 버텼던 나날들, 마침내 첫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터키행 비행기표를 끊었던 순간까지. 내가 어떤 때에 무엇을 하느라 얼마 정도를 썼는지, 한 달 생활비는 최소 얼마가 필요한지, 갑작스러운 지출은 보통 언제 어느 정도 규모로 발생하는지, 가계부에 남은 기록은 미래 설계에 참고할 수 있는 유용한 데이터가 되었다.






내가 매일 가계부를 쓰는 이유는 내게 알맞은 미래를 몇 번이고 그려보며 내 행복을 찾아가기 위함이다. 첫 직장보다 좋은 포트폴리오를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 디자인팀으로 이직을 했고(그래서 월급은 오히려 줄었다), 결국 은행과 부모님의 힘을 빌려서 월세에서 전세로 이사를 갔다. 이번 달 식비가 많이 나온다 싶으면 원래 사려고 했던 물건들을 하나 둘 포기하고, 퇴근길에 '어디 돈 나올 구석 없을까'하고 궁리하는 평범한 사회초년생이다.

본격 가계부 4년 차가 되었지만, 나는 아직 재테크 도사가 되거나 내 집을 장만하지는 못했다. 이제야 숨을 고르고 투자 상품을 기웃거리거나 주택 청약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정도이다. 이 글은 돈 관리를 이제 막 시작하는,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막막한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매일 저녁 가계부를 쓰면서 어떻게 돈 새는 구멍을 찾고 낭비를 줄일지, 재정 상태를 개선하려면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지, 앞으로 경력은 어느 쪽으로 준비해야 하는지, 매일 더 나은 삶을 살고자 고민했던 나의 기록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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