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엄마만의 집이 없다.
노년의 나이에도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모님.
그 밑에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자식.
주말이 되면 아버지는 집 안에만 머물며
밖에서 받은 불편함을 완화시킨다.
주말이 되면 자식 또한 집 안에만 머물며
밖에서 받은 긴장을 풀며 지낸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어머니는
혼자 있을 때 제일 행복해 하는 아버지를 위해
일부러 밖으로 나가신다.
모르는 것도 모르는 아버지는
어머니가 좋아서 나가는 줄 알지만
어머니는 평일에는 일하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내고
주말에는 가장이신 아버지의 온전한 휴식을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밖에서 보내신다.
나 또한 고등학생 때 그랬다.
집은 잠만 자는 공간.
평일에는 학교와 학원에 반나절 이상을 보냈고
주말에는 빠짐없이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밖에 돌아다녔다.
내 꿈은 자취를 시작하는 거였고
나는 이제 내 집이 있다.
온전히 주말에 밖에 나가지 않고
머물 수 있는 나만의 집이 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받은 방해요소를 풀
자기만의 최소한의 피난처가
어머니에게는 없다.
아무리 활동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아무리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혼자만의 공간이 매 주, 매년 없어도 되는 걸까.
한때는 우리 집이었다가
이제는 부모님 집인 그곳은
맨 케이브 man cave
'남성의 동굴'이다.
집이 아닌 것이다.
요즘 여자인 나는
다행히 그에 상응하는 개념의 공간을 가졌다.
하지만 옛날 여자인 어머니는
1929년 일제강점기 때 이미
버지니아 울프라는 여자가 강조한
돈과 "자기만의 방"이 없다.
요즘 시대로는 방이 아닌 집일 것이다.
집.
나의 꿈은 어머니의 집을 사드리는 것.
어머니만의 집을 만들어 드리는 것.
그런데 이 꿈을 이룰 수 있을까 걱정이다.
환갑은 이제 막 내가 대학생이 돼서
칠순은 백수여서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했다.
심지어 칠순은 잊어버리기도 했다.
내 우울에 갇혀서.
그 우울도 나만의 집이 생기고 나아졌다.
집.
어머니의 집.
일제강점기 때 살았던 영국 어느 여자도
중요하게 여겼던 그 공간.
오늘도 나의 것이 아닌
나의 부채감이 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