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해독하는 일
일본 작가 우치다 다쓰루의 '늘 무언가를 읽고 있고, 무언가를 읽어야만 안심이 되는 사람'이라는 글귀를 읽고 “이건 나네?”라고 생각했었다. 달리 말하자면 활자 중독자. 무언가를 읽지 않으면 금세 불안해지고야 마는 사람들. 그런 중독자로 살아오다 35살에 단 하나의 문장도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낯선 이국 땅에 도착했다. 그러니 다른 이들에 비해 이 도시의 언어에 대한 열망이 남달랐다. 매일 아침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자마자, 눈썹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어학당까지 날라가 3시간 수업을 들었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엄마로서의 시간을 보내다 육퇴 후에는 밀린 숙제를 하고, 새벽 2-3시까지 중국어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저절로 그렇게 됐다. 그냥 빨리 이 도시의 언어를 읽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활자 중독자가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이런 거야’며 나의 비정상적인(?) 열망을 이해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읽고 들을 수 있는 단어가 하나 둘씩 늘어가며 느꼈던 기쁨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이었다. 친구들은 중국어가 크게 필요 없는 한인 타운에 살면서 중국어에 목숨 건 나를 의아해 했지만 활자중독자에게 그것은 생존과도 같은 일이었다.
유명한 관광지 ‘치앤먼따지에(前门大街/전문대가)’ 근처에는 ‘양메이주시에지에(杨梅竹斜街/양매죽사가)라는 아름다운 후통이 있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날 걸으면 1분 만에 행복해 지는 골목이다. 동쪽으로는 다쓰란(大栅栏/대책란) 거리와 가까이하고 서쪽으로는 ‘리우리창(琉璃厂/유리창)’ 거리와 이어지는 곳. 총 길이는 496미터로 명나라 때 동북쪽에서 서남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斜街’라는 명칭이 붙었다.
*斜街: 비스듬히 뻗은 거리
청나라 건륭 황제 15년 경성 전도(京城全图)에는 '杨媒斜街'로 기록되어 있다. 중매를 잘 서는 ‘杨媒婆’가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불렸다고 하는데 이후 해음(谐音) 현상을 적용해 媒->梅로 변화되면서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중화민국 시기에는 세계 서국, 중정 서국 등 7개의 출판사가 있었던 문화의 거리였다.
솔로이스트 커피 루프탑에서 바로 보이는 ‘청운각(青云阁)’은 청나라 말기에서 민국 초기시기에 베이징의 고급 상업 오락 장소였다. 康有为(강유위), 谭嗣同(담사동), 梁实秋(양실추), 鲁迅(루쉰) 등 당대 유명 인사들이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술을 마신 곳으로 유명하다.
‘양매주시에지에’에는 ‘핫플레이스’가 될 만한 곳도 많았지만 다른 후통에 비해서 상업화가 덜 진행되어 한적한 편이다.
3년간 매일을 중국어에 빠져 살았다. 무언가를 읽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인 활자 중독자에게 중국어는 단순한 언어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을 뿐. 그리하여 중국어를 공부하지 않고, 그저 습득했다. 이 세계를 조금 더 잘 읽을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하기 위해. ‘오늘 좀 잘 들린다’고 기뻐하고, ‘아냐 역시 아직 하나도 안 들려’ 좌절하며 일희일비하면서도 큰 압박감 없이 행복했던 이유는 그래서였다.
생각해 보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읽는 일이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끝없이 독해하며 해석하는 일.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새로 만난 브랜드를 만든 창업자의 마음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카페 사장의 마음 또한 읽는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끝없이 두리번거리며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고 나만의 언어로 해독하느라 하루가 매우 짧다.
이곳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행복들
1. 카페 <솔로이스트(Soloistcoffee)> 햇살 쏟아지는 2층 테라스에서 햇살 맞으며 청운각을 바라보며 콜드 브루 커피 한잔하기
2. 사합원을 개조한 <스즈키 키친>에서 점심 먹기
3. 작지만 낭만이 넘치던 서점 <모판슈지(模范书局/모범서국)> 들리기
베이징_도시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