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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마음, 인민대학교 옛 터와 카페 ARCH

오지라퍼 안달주의자

by 심루이

나를 특정할 수 있는 성격적 특징을 하나만 꼽아 보자면 역시 ‘무언가를 공유하고 싶어 안달 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어릴 때부터 좋은 음악, 좋은 음식, 좋은 곳을 보면 혼자만 조용히 간직하고 있지를 못했다. 내 이어폰을 빼서 친구 귀에 꽂고, 친구 입에 새로 발견한 떡볶이집의 어묵을 기어코 넣었다. 그리고 급한 성격 탓에 1초 만에 이어지는 질문. “짱 맛있지?” 그러면 눈을 흘기던 친구의 대답.


“야, 아직 씹지도 않았거든”




‘마이너리티’를 좋아하는 나의 습성은 묘한 구석이 있었는데 엄청난 메이저들 사이에서 끝내주는 마이너를 발견하면 나만 알고 싶었는데 나만 알고 싶지 않았다. 나처럼 내 친구들 중에 한 명쯤은 이걸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이렇게 좋은 걸 나만 혼자 알고 있는 건 죄악이야! 알리고 싶어서 마음은 간질, 입도 근질.


이제서야 생각해 보지만 이러한 성격은 내가 10년 넘게 일했던 PR 분야 쪽에도 딱 맞았던 것 같다. 오랜 기간 동안 많은 기획자들의 심혈로 만들어진 각종 서비스들, 플랫폼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창작자들과 비즈니스들. 나는 고작 그 결정체를 외부에 전달하는 역할이었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때때로 진짜 행복을 느꼈다. 요즘 저희 회사에 이런 게 있는데 이거 대박이에요… 모르시면 큰일 나요!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시도 때도 없이 들이밀었다. 친구들도 피해자였다. 술자리 분위기를 깨며 ‘갑분 서비스 소개’를 하며 침을 너무 많이 튀겼으니까. 친구들은 역시 “야, 누가 보면 니가 만든 서비스인 줄 알겠다, 작작하시지”란 반응이었지만서도.


백수의 신분으로 베이징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면서도 나는 중국어를 배우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중국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중국 드라마가 얼마나 유치하면서 짜릿한지, 중국 예능의 PPL이 얼마나 적나라한 ‘한 편의 CF’인지… 늘 열을 올리며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IMG_5717~photo.JPG @카페 ARCH




나의 이런 오지랖 안달 성향이 퀀텀 점프하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베이징 생활 3년 차에 만난 S 언니. 베이징이라는 도시를 나보다 더 사랑하고, 작은 것에 쉽게 감탄하는데다, 5여 년간 베이징 전역을 이미 한 번 훑은 그녀의 정보와 노하우는 굉장했고, 공유 욕망 지수는 나보다 더 높았다. 내가 중국어만 파고 있던 시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차 안에서 조신하게 밖을 구경하고 있으면 언니는 지나가는 건물, 상점, 미술관 등 알고 있는 모든 정보들을 속사포 랩처럼 쏟아내곤 했다. 와, 언닌 나보다 한 단계, 아니 몇 단계는 높은 레벨이구나. 내 마음을 건드린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싶어 안달 난 사람. 모든 것을 경이롭게 받아들이고 감탄할 준비가 된 사람. 이런 사람은 참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거였어. 나는 매 순간 감동받았다.


그 감동은 그저 감동으로 끝나지 않았다. 베이징을 떠난 언니의 빈자리에도 그 속사포 랩은 종종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 랩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으니까.


몇 개의 계절을 지나 베이징의 무수한 길을 걷고 보니 나도 가끔 래퍼 ‘아웃사이더’처럼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떠들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여기 알아? 먹어 봤어? 읽어 봤어? 걸어 봤어? 내가 가봤는데, 걸어봤는데 블라블라블라. 도시를 즐기는 방식은 각자가 다를 테니 너무 심한 오지랖을 부리지 말고 자제해야지 늘 결심하지만, 내가 발견한 다양한 베이징의 모습을 나누고 싶어 여전히 안달이 난다. 가끔은 ‘내가 왜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 경제적인 이익도 없는 이 기록들에 이렇게 마음을 쓰고 있지?’싶다가도 훗날 이 마음이 내게서 사라진다면 나는 조금 슬플 것 같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참으로 다정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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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다정한 마음이 모이면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카페 ARCH




이곳도 S 언니가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거나, 아주 늦게 발견했을 곳. 난뤄구샹에서 한 블록 지나 张自忠路(옛 铁狮子)에 민국 시대 느낌의 멋진 건물들이 있다. 원래는 화친왕부, 민국 시대 때는 위안스카이를 도와 혁명 정부를 만든 정치가 돤치루이(段祺瑞)의 공간이었고, 중국 역사상 첫 종합 대학교인 인민대학교(人民大学)의 옛 터였다.


최근에는 드라마 ‘阳光灿烂的日子’의 촬영지이기도 했다니 하나의 공간에 이토록 많은 역사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기도 하다. (2006년에 6차 전국 중점 문화재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중국과 서양의 장점을 합친 ‘중서합벽(中西合壁)’의 기술로 지어져 과학적, 미학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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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시대 건물 특유의 멋이 있는 건물들, 멋지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대학생들의 졸업 사진 찍기가 한창이었다.


고풍스러운 멋이 넘치는 이 장소 안에 모던한 카페&바가 있으니… 바로 Arch.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정문에서 “네가 정말 카페에 가는 거라면 카페 주인에게 전화해서 확인 시켜줘”라는 아주 이색적인 보안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차로 갔을 때는 그냥 쭉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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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저녁이 되자 화려한 조명이 켜지며 BAR로 변신했다.




뒤로 돌아가 보니 거주자들의 공간이 나왔다. 베란다에서 키우고 계시던 새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걸어보았다.

갑자기 다른 세상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건물 앞에서 졸업 사진을 찍는 푸릇푸릇한 대학생들이 있었고,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허름한 옆 건물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있었고, 분위기 끝내주는 카페 겸 바에서 멋지게 차려입고 칵테일을 마시는 베이징런들이 있었다. 역사의 공존만큼, 다양한 삶이 공존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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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_도시산책

도시를 산책하며 마음을 산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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