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인생
인생이 복잡하고 무겁게 느껴지거나, 누군가가 자꾸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유난히 거슬리는 날이면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를 듣는다.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어? 어? 아니잖아 어? 어?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 저러쿵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미주알 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마는 그건 니 생각이고
노래는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너처럼 아무것도 몰라, 결국에는 아무도 몰라, 그냥 니 갈 길 가’라는 위대한 발견과 제안으로 마무리되는데 내가 볼 때 아무래도 장기하는 천재다.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있으니까 가다 보면’ 마라마라(麻辣麻辣)한 것이 매우 당길 때가 있다. 마음이 답답하거나 우울한 기분이 나를 덮쳐올 때는 유독 그렇다. 백수 생활이 너무 길어지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악몽에 시달렸던 날, 갑자기 다시 번져 가는 코로나 사태로 비행기 타기 20시간 전에 윈난 여행을 취소해야 했던 날에도 나는 촨촨샹(串串香) 집에 갔다.
“요즘 젊은 애들은 훠궈보다 촨촨샹을 더 좋아한대” 밤 10시에도 입맛이 당기면 훠궈를 먹으러 집 근처 ‘하이디라오’에 갈 정도로 훠궈에 한참 빠져있었다. ‘한밤의 훠궈 나들이’에 시들해질 무렵 ‘촨촨샹(串串香)’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촨촨샹의 정체를 찾아보니 쓰촨 청두에서 시작된 대중적인 음식으로 탕에 재료들을 넣어서 익혀 먹는 게 ‘훠궈’와 비슷한 음식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막대기에 꽂혀 있는 재료들을 내가 직접 골라와서 익혀 먹는 방식이니 ‘꼬치 훠궈’ 정도가 되려나? 그릇으로 주문해야 하는 훠궈 집에 가면 인원이 많지 않은 이상 다양한 재료를 시키기가 힘들기 마련인데 촨촨집에서는 꼬치로 고를 수 있으니 최대한 다양하게 고른다. 꼬치 하나에 1위안(170원) 정도라 가격 부담이 적어서 둘이 양껏 골라도 200위안(한국돈 34,000원) 안쪽으로 다양하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쏙쏙 빼먹는 게 재미있다. 인생도, 음식도 역시 재미지!
‘串’
희한하게 생긴 촨이라는 글자다. ‘꼬치구이’라는 뜻인 이 글자는 꼬치에 재료들이 꽂혀 있는 모습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다. 발음은 촨촨, 북경식 얼화를 섞어 보면 촬촬! 발음도 재미있네, 촬촬!!
대낮에 촨촨샹 체인인 ‘马路边边(마루비앤비앤)’ 순의점을 찾았다. 이곳은 ‘길거리’라는 상호명에 걸맞게 길거리에서 먹는 것 같은 독특하고 재미있는 느낌의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다. 언제나 우리 탁자를 주시하며 무언가를 챙겨주는 ‘하이디라오’ 종업원들의 과한 친절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서, 내 멋대로 가져와서 먹고 나중에 꼬치 개수만 세어 계산하면 되는 분위기가 편했다.
제일 좋아하는 꼬치는 소고기에 할라피뇨를 싼 강렬한 맛이다. 먹으면 마라한 매운맛과 할라피뇨의 매운맛이 동시에 혀와 머리를 강타하며 아찔해진다.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을 하며 여행 취소의 아쉬움을 달랜다.
발랄하게 꼬치를 쏙쏙 빼먹으면서 생각해 본다.
내 인생에서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말을 해본 적이 있었나? 보기보다 소심해서 타인들의 시선을 내 마음보다 더 신경 쓰며 살아온 나에게는 한 번도 없는 경험이었다. 갑자기 '그건 니 생각이고'를 부른 장기하처럼 ‘아무것도 아니지만, 실로 위대한 생각’이 나를 파고든다.
인생 별거 아니잖아, 더 가볍고 재미있게 살아도 되잖아. 나로 살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카프카도 말하지 않았던가. 조언이란 결국 모든 배신에 불과하다고. 아무도 함부로 쉽게 조언하지 않는 세상, 각자 잘 사는 세상, 그건 니 생각이고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건 니 생각이고’를 말해 보지 못한 세상에서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 위에 촨촨샹이 있다.
베이징_도시산책
도시와 마음을 함께 산책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