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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촌에서 만난 행복, 幸福村中路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명료한 대답

by 심루이

‘행복’에서 중요한 부사는 ‘강하게’가 아니라 ‘자주’이다. 소소한 행복의 감정들을 자주 느끼다 보면 결국 행복한 하루를 살 수 있으니까. 소소한 행복감을 ‘자주’ 느끼기 위해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스스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 동안 그것들을 조금씩 해나가면 된다. 김경일 교수는 그 리스트를 자주해 나가는 것이 지치지 않고, 다시 힘을 내서 나아갈 수 있는 내 몸의 ‘배터리’이자 ‘에너지원’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좌절이나 무력감에서 잘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에도 격하게 공감한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결국 원하는 많은 것들을 이뤄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행복’이라는 단어를 유난히 좋아해서 행복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나이를 먹고 나서는 ‘철없는 낙관주의자’처럼 보일까 봐 티는 내지 않지만 여전히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중국 단어 중에 제일 좋은 것 중 하나 또한 행복을 뜻하는 ‘幸福’다. ‘씽푸’라니 발음도 어여쁘다. 베이징에 행복촌이라는 이름을 가진 거리가 있었다. '幸福村中路'. 자주 드나드는 싼리툰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데 여긴 어디지? 호기심이 생겨서 <핫 플레이스 주변 거리 걷기 프로젝트>로 찾아가 보았다.

* <핫 플레이스 주변 거리 걷기 프로젝트>: 핫플레이스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숨겨진 거리들을 걸어보는 프로젝트로 올해 나 혼자 은밀히 시작함

WeChat Image_20210512232958.jpg 씽푸지에에 가서 만난 진짜 씽푸


조용한 거리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커피 브랜드 <베리빈즈>와 수제 맥주 브루어리 <京A>, 가보고 싶었던 우육면집 <23坐>까지 있어서 핵심만 추려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23坐>는 이름 그대로 23개의 좌석에서 ‘牛肉面’을 판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강렬한 실버 인테리어. 온통 실버, 실버인데다 배경 음악은 일렉트릭 팝이 흘러나오고 있어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우주선을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때 한창 다니던 독서실 좌석처럼 단절된 좌석 23개가 있었다. 안내 받은 자리에 앉아 QR코드를 이용해 주문을 했다. 면 굵기만 6개. cm로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가장 무난할 것 같은 중간 사이즈를 선택하고, 꽉 막힌 내 자리를 둘러봤다. 옆 자리에 앉은 이들의 말소리는 들렸지만 벽이 쳐져 있어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내 자리에 적힌 숫자는 06. 여섯번째 자리인 모양이었다. 멍 때리고 있으니 갑자기 내 자리의 문이 스르륵 열리고 손 하나가 등장해 우육면을 전달해주고 문이 스르륵 다시 닫혔다. 나 독서실 같은 우주선에서 맛있는 면을 먹었어,라고 사진을 보냈더니 춘은 교도소 같다고 했다. 우육면은 명성에 걸맞게 훌륭했다. 우육면을 한 그릇 해치우고 다시 행복촌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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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계단을 좌석으로 쓰고 있던 카페 <베리빈즈> 앞에는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개와 맥주와 햇살’의 환상적인 콜라보로 거리 한 복판에 앉아있던 외국인을 만났는데, 그 모습이 너무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오전 11시에 햇살과 맥주라니 이것은 나를 1초만에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위대한 조합이다. 어쨌든 그녀를 보며 이 거리가 왜 행복촌인지... 완벽하게 이해했다. 가끔 걸으며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삶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게 느껴지는데, 이 순간도 그런 경이로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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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Chat Image_20210512232925.jpg
WeChat Image_20210512232942.jpg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으면 나와보라고해!!!




행복은 인생에 찾아오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정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행복의 반대어가 불행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슬퍼하지도, 힘들어하지도, 기뻐하지도 않는 감정의 멈춤, 살아있다는 실감의 부재가 행복의 반대어가 아닐까.


나는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행복 만능주의는 아니지만 결국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저곳에서도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살아가며 성취에서 오는 행복뿐 아니라 존재, 과정, 관계, 혹은 모든 실감에서 수만 개의 빛깔을 지닌 행복을 찾을 수 있으니까.


행복촌을 신나게 걸으며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리스트들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본다. 이렇게 낯선 거리를 걷는 일,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타는 자전거, 목이 마르면 어딘가에 앉아서 들이켜 보는 커피 한 모금, 각자의 삶을 충실히 해내고 집으로 돌아온 가족과 꼭 안아보는 순간, 잠들기 전 마시는 맥주 한 잔과 쥐포 한 장의 콜라보, 잠옷을 입고 침대에 편하게 누워서 읽는 좋은 이야기들과 웹툰. 내가 매일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쉽지 않은 삶이라는 여행 속에서 나만의 해피 리스트들을 자주자주 행하면서 짧지만 즐거운 순간들을 스스로에게 선물해 준다. '반복 내성'을 경계하면서 이 기쁨들이 나에게 매일 오는 그 '순간'을 더 기쁘게 맞이한다.


부동산, 성공, 성취, 미래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 리스트들은 단순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궁극적으로 이 순간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삶을 추구하며 나는 살아갈 것이니까. 이 리스트는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아주 간단하고도 명확한 대답이다.




이곳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들


1. 따종디앤핑 인기 면집, 베이징 우육면(牛肉面) 순위 6위에 빛나는 <23坐>에서 우육면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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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벽돌담의 운치가 있는 <面包会有的/Therewillbebread>에서 빵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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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京A>의 대표 맥주 'Worker's ale(노동자의 맥주)'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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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_도시산책

도시를 산책하며 마음을 산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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