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방한 중국인들의 식사 주문의 자세
베이징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시절에 김연수 작가님이 중국의 ‘칭커(请客_다른 이에게 한 턱 내다) 문화’에 대해 쓰신 글을 읽고 배꼽을 잡고 웃었더랬다. 에세이집 <지지 않는다는 말>에 수록된 부분은 이랬다.
안면을 트게 되면 중국인들은 반드시 나를 ‘칭커’하게 된다. 그러니까 칭커란 한턱낸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턱’이라는 단어로는 칭커의 그 광활한 세계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칭커라는 말속에는 “너로 하여금 당분간은 음식 생각이 나지 않도록 만들고야 말겠다”는 결의 같은 게 숨어 있다. 중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둥근 식탁에 음식이 계속 쌓이는데, 접시 3개가 3층 높이로 쌓이는 것은 보통이고 어떨 때는 4개까지 올라가는 것도 봤다. ……(중략)
요약해서 정리하자면 ‘칭커’란 친하게 지내고자 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그들이 “이러다간 배가 터지지 않을까”라고 걱정할 즈음에 “이제 그걸 주문을 해 볼까”라는 표정으로 요리와 술을 더 시킨 뒤, “많이 드셨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계산하는 행위를 뜻한다.
칭커 문화와 중국인들의 대식가적 면모는 다른 곳에서도 다양하게 읽을 수 있었기에 궁금했다. 이들은 진짜 이렇게 많이 시키고, 많이 먹는가! 이 문화를 제대로 파헤치기도 전에 베이징에 오자마자 ‘칭커’를 당했으니 바로 남편에게였다. 때는 바야흐로 베이징에서 하게 된 첫 외식이자 내 생일 저녁. 지인에게 추천받은 유명 중식당으로 우리를 데려간 남편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이것저것 시켰다. 그런데 ‘중알못’인 내가 봐도 너무 많이 시키는 것이 아닌가? 고작 어른 2명에 5살짜리 아이 한 명인데 8개가 넘는 메뉴. 남편은 중국은 밑반찬의 개념이 없어서 곁들여 먹을 것들을 시키다 보니 그런 거라고, 주문한 메뉴들이 양이 많지 않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웬걸, 남편의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8개 메뉴가 모두 광활한 접시에 담겨서 서빙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앉았던 작은 사이즈 식탁으로는 도무지 다 놓을 수가 없어서 큰 식탁으로 옮겨야 할 판이었다. 요리가 반쯤 나왔을 때부터 남편의 얼굴은 하얘지기 시작했는데 그도 모든 것이 다 메인 요리일 줄은 몰랐던 것이겠지. 어쨌거나 8개의 요리가 층층이 쌓였을 땐 나는 제대로 먹기도 전에 살짝 질려버렸다. 그 요리들을 보는 것만으로 이미 세 끼는 먹은 사람처럼 속이 더부룩해졌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내가 궁금해하던 중국의 칭커 문화를 몸소 실천해 준 남편을 앞에 두고 깨작거리면서 ‘그걸 모두 뱃속에 집어넣는 것보다 중국 일주 도보 여행을 하는 편이 덜 힘들 것 같다’는 김 작가의 글귀를 떠올렸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날 남편의 주문이 그렇게 과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을 먹고 싶어서 근처에 위치한 한국 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유명한 곳이라 한식을 사랑하는 중국인들도 많았는데 이곳에서도 그들의 대식가적 면모는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귀여운 중국인 커플의 식탁에는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와 부르스타에 올려져 있던 즉석 떡볶이, 심이 얼굴만 한 왕돈가스, 치킨 샐러드에 추억의 도시락까지 놓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친구들 무리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며 곁눈질로 다른 일행의 합류 여부를 살폈지만 그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체격도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커플이었는데 저 음식들은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건지, 중국인들은 정말 ‘위대(胃大)’한 종족들인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까운 음식물이 쓰레기가 되어 망가질 우리의 지구가 그저 걱정되었을 뿐이다.
우리의 귀한 지구를 음식물 쓰레기에서 구출해 주는 문화가 있었으니 바로 ‘따바오(打包_포장)’다. 어느 식당에서건 간편한 포장을 위한 용기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서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음식을 남김없이 싸간다. 본인이 직접 담을 수 있으니 간편하다. 물론 가끔 이것이 따바오를 위한 주문인지, 식당 식사를 위한 주문인지 알 수가 없을 때도 있다. ‘음식을 먹다가 남았으니 싸주세요’가 아니라, ‘제가 3일 치의 식사를 포장해 갈 건데 여기 잠시 앉아서 맛을 보다 갈게요’ 정도의 느낌이랄까.
어쨌든 태생적으로 음식을 남기지 못하는 병이 있는 나는 그 문화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남긴 음식을 싸가고 싶어도 한국에서는 눈치를 보곤 했는데 이곳에서는 전혀 그럴 일이 없다. 아주 작은 양이라도 당당하게 요구한다. 소규모 인원이 중식당에 가면 다양한 음식을 맛보지 못해서 아쉬울 때가 많은데 한두 개 요리를 더 시키고 깔끔하게 먹은 뒤 포장해 온다. (참고로 우리 가족 첫 외식의 8개의 메인 요리는 춘이 모두 집으로 가져와서 남김없이 먹었더랬다. 한 일주일 치 식사가 가능했던 정도? 남편은 이 에피소드를 꺼낼 때마다 자신이 결국 모두 먹었다는 걸 그렇게 강조하십니다.)
중식을 좋아해서 중식당을 밤낮없이 드나들었더니 원탁형 테이블에 접시들이 세 겹씩 쌓여 있는 광경은 흔한 일이었다. 성숙한 포장 문화를 고려한다고 해도 아무래도 중국인들의 위는 조금 큰 것이 확실하다. 그들이 하루 종일 들이키는 차(茶)를 생각해 보면 방광도 조금 특별한 것 같다. 최근 쓰레기 분리수거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운동을 정부 차원에서 벌이고 있으니 이런 문화의 흐름도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어쨌거나 중국인의 칭커를 받게 된다면 절대 음식을 남김없이 먹지 말고 마지막 조각은 남겨야 한다. 중국인들은 음식이 남지 않으면 자신의 대접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금 남겨라. 그렇지 않으면 상심한 그가 ‘당분간 음식 생각 따윈 나지 않는 광활한 칭커의 세계’로 다시 당신을 인도할 것이 분명하니까.
---
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