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과 빨래

얼룩 같은 슬픔일랑 빨아서 헹궈버리자

by 심루이

홍콩이나 베니스에 가 보면 필자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건물의 입면에 널려 있는 빨래이다. 빨래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당연하게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예전에 주병진 씨가 경영하던 보디가드라는 속옷 브랜드의 광고 문구 중 하나를 대충 기억해 본다면, “얘야, 속옷 빨래 널린 것을 보니 뼈대 있는 집안이구나”라는 것이 있었다. 이 광고 문구는 빨래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훌륭한 도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건축물도 중요하고 자연환경도 중요하다. 하지만, 결국 도시를 훌륭하게 완성하는 것은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이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을 담아낼 수 있어야 성공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생생한 증거를 밀도 있게 만나는 경험은 흔하지 않다. 그러니 역사가 오래된 후통도, 최근 제일 핫한 카페가 있는 후통도 좋지만 제일 걷고 싶은 후통은 역시 빨래가 많이 널려 있는 후통이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티셔츠, 스웨터, 바지, 내복, 이불들이 ‘뼈대 있는 집안’의 위엄을 드러내며 후통 어딘가에서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나부끼고 있다. 삶의 정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빨래 앞에서는 걸음이 아주 느려지는데 빨래를 만나는 것은 흡사 그 골목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연유로 염치없게도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특히 ‘빨래’에 관해서는 ‘무관여’에 가까웠다. 이제 친정 집이 되어버린 오래된 아파트의 작고 낡은 다용도실 문은 곧 부서질 듯 삐그덕거렸고 바닥 타일은 현대 미술 작품처럼 군데군데 벗겨져 있어서 그 문을 통과해 세탁기까지 가기에는 여러 가지 기술과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자식들에게 궂은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던 엄마는 다용도실 출입 금지령을 내렸고 자연스럽게 ‘빨래’라는 집안일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던 말 잘 듣고 철없는 딸이었다.


신혼집에서 처음으로 집안일이라는 걸 시도(?)하고 있을 무렵, 침대에 앉아 빨래를 개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왜 하필 빨래였는지는 모르겠다. 빨래보다 더 하드코어인 음식물 쓰레기 처리 작업과 화장실 변기 닦기도 있건만, 빨래였다. 아주 오랜 세월 내 침대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던 옷가지의 풍경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빨래를 착착 개던 그때서야 처음 나를 찾아온 것이다.


엄마는 평생 가족을 위해 대체 몇 천장, 아니 몇 만장의 빨래를 개어 왔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일을 하던 수많은 시간 동안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몸을 최대한 얇게 만드는 기술로 축축한 빨래를 꺼내, 반대편의 낡은 베란다로 건너가 빨래들을 탁탁 털어 널고, 마른 옷들을 착착 개켜서 각자의 방 침대 위에 놓아두었던 길고 지난했을 세월. 울면서 빨래를 개다 보니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가족들의 옷을 개어왔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 옷을 입고 다시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 세상으로 가야 하는 우리를 향한 응원. 억울함 넘치던 삶을 보듬어 주는 다정한 위로. 새 옷처럼 깨끗해진 옷을 입으면 너덜너덜 해졌던 마음들이 조금쯤은 나아졌던 건 그 때문이었다.


뮤지컬 <빨래>의 OST 넘버 중 하나인 ‘내 딸 둘아’를 부른 엄마도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얼룩 같은 슬픔일랑 빨아서 헹궈버리자, 먼지 같은 걱정일랑 털어서 날려버리자." 사랑하는 이의 옷을 빤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의미인지도 모르는 것을.


그러니까 엄마가 평생 나를 위해 해 준 그 빨래들 덕분에 내가 이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서 중간에 낙오되지 않고 잘 걸어왔다고, 견디고 있다고 말해야 했다. 빨래 더미에 쓰러져서 비운의 여주인공처럼 엉엉 울면서 빨래가 눈물에 젖으면 다시 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기니 수건을 대어 놓고 울자고 생각했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빨래가 있는 풍경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 어느 도시로 여행을 가든 낯선 도시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빨래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각 도시마다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 보이는 다정함의 흔적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아쉽게도 잘 사는 도시일수록 빨래가 널린 풍경을 찾기가 쉽지 않다. 도시 미관을 헤쳐 떨어질 집 값을 걱정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일까? 오죽하면 미국은 빨래를 널지 못하게 법으로 정해두기까지 할까.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베란다를 확장하는 것이 트렌드가 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빨래 덕후인 나조차도 항상 방 안에서 건조대를 사용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먼저 사고 싶은 것이 ‘건조기’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빨래가 널린 도시의 풍경들은 더욱 급속도로 사라질 것이다.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처럼 재미와 생동감이 사라진 도시 풍경을 생각하면 어쩐지 조금 슬프다.


창문과 관련하여 또 다른 궁금증 하나는 빨래와 관련된 것이다. 독일과 그 주변국 어디에서도 널어둔 빨래를 본 적이 없다. 한 달 넘게 있었는데 단 한 번도. 건조기 사용이 매우 보편화되어 있는 것과 함께, 널어둔 빨래를 남에게 보이는 걸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는 게 아닐까 추측했다. 그 문제를 잊고 있었는데 미국에 사는 친구와 대화하다가 다시 떠올랐다.


“이불 빨래를 앞마당도 아니고 뒷마당에 널었다가 주민협회에서 경고를 받았다니까. 날씨가 정말 좋아서, 속옷도 아니고 이불을 잠깐 넌 것이었는데도.”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다행스럽게도 아직 대부분의 후통에서는 빨래가 널어져 있는 풍경들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아주 유명한 관광지나 역사 현장, 핫플레이스 근처 후통도 예외는 없다. 그곳에도 사람은 살아가고 있으니까. 빨래들은 라오 베이징런(老北京人)들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품고 바람을 배경 음악 삼아 신나게 휘날리고 있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을 담아내는 풍경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다.


언젠가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면 이불을 탁탁 털어 따사로운 햇살 아래 널어보고 싶다. ‘얼룩 같은 슬픔과 먼지 같은 걱정’을 따뜻한 햇살과 솔솔 불어 올 바람에 싹 말려 버리고 싶다. 하루 종일 이불이 머금었을 햇살을 덮고 잠들고 싶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나는 조금 더 전투력이 상승한 상큼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자, 그러니 오늘은 빨래를 하면서 다 같이 뮤지컬 ‘빨래’의 또 다른 넘버인 <슬플 땐 빨래를 해>를 불러보자.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네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슬픔도 억울함도 같이 녹여서 빠는 거야.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다 보면 힘이 생기지! 깨끗해지고 잘 말라 기분 좋은 나를 걸치고 하고 싶은 말 다시 한번 하는 거야’


그래, 바람에 인생을 맡기는 거야, 어제의 슬픔과 억울함은 빨래의 구정물과 함께 보내 버리는 거야, 나를 방해하는 것들은 욕조 안의 이불처럼 다 밟아 버리는 거야! 그러는 거야!!!

2021-06-17-10-58-41.jpg 단재 선생님이 머무르신 차오떠우 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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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2-13-58-11.jpg 시청취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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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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