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된다고
나는 넓은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른의 세계에는 일종의 생략된 안정감이 있었다. 고개를 들지만 않으면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가슴 아랫부분이었다. 너무 못생긴 것 때문에 슬퍼할 필요도 없었고 인간 세계의 희로애락에 마음이 흐트러질 필요도 없었다. 일단 빽빽한 인파의 흐름 안으로 들어서면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도 통하지 않았다. 힘들게 몸부림을 쳐야만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겉에 철판을 덧댄 대문은 자신의 변형된 얼굴을 닫아버리고, 유리창 속에 겹겹이 비치는 사람들 그림자는 무수한 담배꽁초만 밟고 지나갔다.
베이징, 내 유년의 빛, 베이다오(北岛)
종종 아이와 함께 후통을 걷는다. 아이는 내가 예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해준다. 가령 후통 한 구석에 쳐박혀 있는 녹슨 운동 기구 따위의 것. 그리고 그런 운동기구로도 미친 듯이 즐거울 수 있는 동심 같은 것. 아이와 깔깔거리며 발을 구르는 시합을 벌인다. 누가 이겼는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다. 늘 승자는 정해져 있다.
길을 함께 걷는 것만큼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후통을 뛰어다니는 아이를 ‘이런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까?’라는 호기심으로 바라본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이 너무 많아서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가끔은 귀찮고, 가끔은 싫고, 그래도 제일 많이 기뻤는데 타국에서는 더욱 그랬다. 처음 보는 중국 아이에게 같이 놀자고 뻔뻔하게 들이 대고, 겁도 없이 아이 학교 친구들에게 중국 동화를 읽어줬던 일 같은 것들. 아이의 강렬한 눈망울이 없었다면 나는 내 안에 그만큼의 용기가 있는지 조차 몰랐을 테다.
타국에서 자라서 그런 건지, 그냥 나를 닮은 건지 아이는 눈물이 많다. 시도 때도 없이 운다. 눈물이 유난히 많은 아이에게 울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울다 보면 더 슬퍼지고, 자주 울다 보면 다른 이들이 ‘그냥 쟨 울보야’라고 생각해 버려서 진짜 네가 슬플 때 알아줄 수가 없잖아. 양치기 소년 이야기까지 끄집어내며 열변을 토한다.
아이는 자기도 울기 싫은데 눈물이 저절로 난다고 했다. 강하고 투박한 말들이 여린 마음에 꽂혀 상처가 될 때 그렇다. 자기도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요즘은 안 우는 척을 한다고, 친구들이나 선생님 몰래 눈물을 닦아 내기도 한다고 했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마음이 찌릿했다. 예전의 나도 똑같았다. 울기 싫은데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입술을 깨물고, 눈을 크게 떠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봐도, 소용이 없었다. 약해 보이는 게 싫어서 이성적이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슬퍼도, 기뻐도, 화나도 눈물부터 먼저 흘렀던 시간이 길었다. 눈물을 들키지 않는 다양한 방법들을 벌써부터 혼자 터득하고 있는 아홉 살 아이가 안쓰러웠고 그 여린 감성이 나에게서 간 것 같아 미안했다.
사실은 울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예전의 내가 듣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그렇게 울다 보면 언젠가 너의 감성과 슬픔을 다독여서 튼튼한 뿌리를 가진 나무로 키울 수 있는 너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아이의 감정은 오롯이 아이의 몫이기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정을 나누는 사이임에도 대신 울어줄 수가 없다. ‘엄마가 무척이나 너그럽고 다정해서 유년기 내내 실컷 울고 웃었다’는 이슬아 작가의 말처럼 나도 내 아이에게 그런 너그럽고 다정한 사람으로 늘 존재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편하게 실컷 울 수 있기를. 이 세상 구석에 그런 장소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면 그곳은 엄마 품 안이 되어야 하니까.
식탐이 많아서 밥을 먹을 때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럼 저작의 리듬이 꼬여 음식물과 함께 내 살을 꽉 씹기 일쑤였다. 밥을 먹다가 입을 틀어막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복희를 바라보곤 했다. 그럼 내 엄마 복희는 꼭 자기가 혀를 씹은 것처럼 고통스러워했다. 얼굴을 있는 대로 찡그리고는 세상에 얼마나 아프냐고, 어쩌면 좋으냐고 외치며 나를 감쌌다. … 내가 아플 때 복희만큼 아파해 주는 사람은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가끔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최근 새로 산 에세이 제목을 아이에게 알려줬다. '신데렐라(灰姑娘)'라는 재미있는 필명을 가진 작가의 글인데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보자마자 구입했다.
这世界偷偷爱着你. (이 세계는 너를 몰래 사랑하고 있어)
아이는 제목이 귀엽다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었다. 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그래. 너를 아주 몰래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단다.
아주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마음을 나누며 함께 걷는다. 너와 오래 가꿔가고 싶은 이 ‘우정’이라는 마음. 서로에게 불행이 불쑥 찾아왔을 때 기꺼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눠 들고 싶은 친구. 지금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 아는 척을 하지만 사실 아이에게 알려 줄 것은 이것뿐이다. 어떤 암흑 속에서도 매일 빛나는 작은 순간들은 있기 마련이라고. 깜깜한 밤하늘에 빛나는 작은 별처럼. 가끔은 너무 멀고, 희미해서 아무리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 별들을 찾아내는 연습을 하자고. 그리고 엄마 앞에서는 언제라도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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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