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과 청소

똥이 가져다주는 행운 같은 것

by 심루이

베이징에서 하루를 상쾌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거리를 유심히 살피며 걸어야 한다. 베이징 거리에는 똥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에 애견인들이 정말 많은데, 아직 사랑하는 개의 똥까지 완벽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다. 가끔 개의 똥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 것들이 많아서 사악한 의심의 기운이 몰려오기도 하지만, 아닐 것이다. 웬만한 아이보다 더 큰 개들도 많으니까.


그러니까 베이징에 온 초창기에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거리를 걷는 행위가 조금은 고역이었다. 똥을 밟지 않으려면 땅을 보고 걸어야 하는데, 땅을 유심히 보고 걷자니 똥을 너무 많이 보게 되어서 내가 똥이나 보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서 기분이 상했다. 변해가는 나의 모습도 당황스러웠다. 예전의 나는 ‘똥’이라는 단어를 싫어해서 그것을 항상 ‘대변’ 혹은 ‘응가’라고 지칭했었는데 아이가 길에서 뛰어다니기 시작하자 다급한 마음에 하루에 몇 번씩 “똥 밟지 마!”라고 소리를 지르게 된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적응이 됐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거리의 똥도, 똥이라는 귀여운 단어를 하루에 몇 번씩이나 내뱉는 나도.


중국어 표현 중에 ‘狗屎运(gŏu shĭ yùn)’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개똥운’이라는 뜻으로, 개똥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다. ‘똥 밟으면 운수 대통’이라는 미신처럼 나도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똥 많이 봤으니 오늘 운수 대통! 자칫 방심하다가 똥을 설사 밟더라도 운수 대통!




거리가 이러니 사실 후통의 풍경도 쉬이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대보다 후통은 늘 깨끗하다. 아침 일찍 후통에 가면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아침 후통의 주인공은 어쩌면 형광 주황색 옷을 입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청소부들이다. 상큼한 후통의 아침 풍경과 잘 어울리는 그들은 오물과 쓰레기를 치우고, 골목 구석구석을 부지런히 쓸면서 주민들과 유쾌한 대화까지 나눈다. 이른 아침에 걸어보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역시 정말 중요한 일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오늘은 베이징 최고의 관광지인 왕푸징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동창 후통(东厂胡同)을 걸으며 세상을 청소하는 그들을 만났다. 동창 후통은 그냥 살펴보면 아무 특이점도 없는 곳이다. 하지만 역사를 알고 보면 후통 중 가장 무서운 후통인데, 명나라 영락제 때 설립된 세계 최초의 특무기관(우리나라로 치면 예전 안기부 정도랄까)이었던 '동창(东厂)'의 본거지가 여기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사찰하고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후통 이름의 유래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인이 이 후통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이곳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청포도'의 이육사 선생님이 순국한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1944년 1월 16일, 당시 베이징을 점령한 일본의 총영사관 부속 헌병대 감옥이었던 동창 후통 28호 지하 감방에서 그는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28호의 스산한 문으로 현재 그곳에 거주하는 중국 아주머니들이 장바구니에 대파나 양파 따위의 채소를 실은 채 자전거를 타고 들어갔다. 그 광경을 몇 번이고 바라봤다. 학창 시절 별다른 감흥 없이 ‘5연 15행의 자유시이자 일제의 압박에 항거한 대표 저항시’ 정도로 이육사의 ‘광야’를 달달 외우던 나와 열심히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청소부 아저씨와 아침을 준비하러 바삐 삶의 터전으로 사라지는 아주머니들의 시간이 만난다. 오래전 아픈 역사와 현재의 평범한 일상이 전병 안에 든 재료들처럼 층층이 겹쳐져 있었다.


두 사람이 있다. 그림 그리는 젊은 청소부와 시를 전공한 특수 청소부. 전자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아직 밥벌이할 수준은 되지 못해 몇 년째 시간이 자유롭고 안정적 벌이를 보장해주는 청소 일을 하고 있는 <저 청소일 하는데요?>의 김예지 작가. 후자는 대학에서 시를 전공하고, 여가 시간에는 피아노를 치며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해 주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죽은 자의 집 청소>의 김완 작가다. 둘의 삶은 다르지만 닮았다. 이상할 것도, 거룩할 것도 없는 생계를 위한 일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시선과 편견에 맞서고 있는 것. 생생한 현장의 언어와 고민과 성찰의 흔적들이 만나서 비로소 완전해지는 시간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


남의 시선을 어떻게 이기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김예지 작가는 대답한다. 이기지는 못해요, 그저 견디는 거죠. 4년을 헛되이 보낸 건 아닌가 고민이 들 때, 남들과 다른 게 무서울 때 가만히 생각해 봐요. 내가 필요해서 시작했고 좋은 것들도 결국 얻었다고. 확실한 건 4년이 헛된 것이 아님을 알았다는 거예요.


내가 최근에 읽은 텍스트 중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슬펐던 <죽은 자의 집 청소>의 김완 작가는 어느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한 사내다. 착화탄으로 자살하면서 분리수거까지 마친 이, 침대 위까지 오물로 가득한 곳에서 마지막을 보낸 이, 저장 강박증으로 본인의 오줌까지 몇 천 개의 페트병에 넣어 보관한 이, 캠핑용 텐트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한 이, 피와 온갖 부패 액을 담뿍 머금고 층층이 쌓여 있던 솜이불 위에서 생을 마감한 이… 그는 누군가의 삶과 죽음이 엉켜있는 그곳에 가서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그들이 남긴 삶의 증거들을 따라 청소를 하고 그 기억들을 시를 닮은 밀도 높은 문장으로 재현해 냈다. 그의 삶도 그의 글처럼 탄탄할 것이라 예상됐다.


어쩌면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시간이란 모든 이에게 그런 방식으로 공평하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군요. 지난달에 돌아가신 당신도 생전에 바로 이 문 앞에서, 짧은 순간이지만 이어 보면 꽤 오랜 시간을 보냈겠죠.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는 이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두께 사 밀리미터의 강인한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진 상자 안에는 여러 가지 보호 장구가 들어 있습니다. 파란색 수술용 글러브와 역시 파란색 신발 덮개, 그 안에 덧신는 투명한 파란색 비닐로 만들어진 또 다른 신발 덮개, 하얀색 방진 마스크와 연한 회색의 방독 마스크, 그리고 현관문을 여는 데 요긴 한 공구 따위가 손잡이가 달린 두 상자에 나누어져 담겨 있습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청소는 삶 앞에서만 의미가 있는 줄만 알았는데 죽음과도 맞닿아 있었다. 죽음과 닿아 있는 청소를 시작하기 위한 마음가짐은 조금 달랐지만, 결국 똑같다. 장비를 갖추고 무언가를 치운다. 깨끗해진다. 더 잘 살기 위해서, 혹은 더 잘 죽기 위해서.


후통의 그들이라고 뭐가 다를까. 예전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기 바빴던 그들에게 공손한 이방인은 아주 소심하게 “수고가 많으세요(辛苦了)”라는 인사를 건네 본다.

2021-10-27-10-45-38.jpg 아주 평범해 보이는 동창 후통(东厂胡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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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후통 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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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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