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과 고양이

후통에서 제일 부러운 존재

by 심루이

어떤 기자가 내게 “만약 스스로 묘비명을 쓴다면 뭐라고 쓰겠습니까?”라고 물은 적도 있다. 내 대답은 이랬다. “그는 늘 자신이 즐거운 고양이이기를 바랐다.”


장샤오위안, <고양이의 서재>, 유유출판사, 2015


후통을 걷고 있자면 부러운 존재가 생기는데 고양이다. 사합원 지붕 위 혹은 정원에서 햇살을 받으며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를 자주 마주하는데 부럽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다가가는 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열 살 무렵 내 몸보다 더 큰 개에게 물릴 뻔한 기억 때문이다. 이후 강아지나 고양이를 볼 때마다 느끼는 양가감정. 귀엽다, 다가가고 싶다. 무섭다, 또 물리면 어쩌지.


이런 내가 고양이를 볼 때마다 떠올리는 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린 시절 키운 고양이다. 하루키의 고양이 사랑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었지. 어쨌거나 그의 집에는 언제나 고양이가 있었다. 형제가 없는 그에게 고양이와 책은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그는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조금은 놀라운 제목의 책에 어린 시절 바로 그 고양이를 소개한다. 사연은 더 놀랍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고로엔 해변에 가 키우던 줄무늬 암고양이를 버렸다. 희한하게도 집에 돌아와 보니 고양이가 먼저 집에 도착해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곳을 들리지도 않고 바로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 그런 일이 생겨 버린 것이다. 고양이에게 ‘추월 당해 버’린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 고양이를 다시 키우기로 한다. 작가는 그때 아버지 얼굴에 번지던 옅은 안도감을 기억하고 있다. 대체 고양이를 왜 버리기로 한 건지, 자신은 왜 그 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동참한 건지에 관련된 기억은 희미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절연 관계로 지낸 아버지와 마지막 대화를 나눌 때 작가는 그 사실을 기억해 낸다. ‘멋지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그와 공유하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그나저나 그 고양이는 어떻게 사람이 맹렬하게 몰던 자전거보다 더 빨리 그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일까? 고양이를 볼 때마다 그 비밀이 궁금해서 코가 시큰거린다.


베이징 후통을 오래 걷는 동안 수많은 고양이들을 만났다. 잊을 수 없는 고양이가 몇 마리 있다.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좐타(砖塔)후통 끝에 위치한 서점 ‘정양슈쥐’의 책 사이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던 냥이, 제일 좋아하던 둥쓰(东四)후통 박물관에 살고 있던 냥이, 그리고 허우하이 근처 극장 ‘구러우극장(鼓楼西剧场)’에 있던 카페 ‘EMPTYCUP COFFEE’에서 만난 냥이다.


특히 카페에서 만난 고양이와는 남다른 사연이 생겼다. 극장 1층에 위치하고 있던 카페는 노트북을 충전할 수 있는 자리가 딱 한 군데 밖에 없었는데 하필 고양이가 그 자리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조금 무서웠지만 충전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서 맞은편에 앉았다. 숨을 죽인 채 충전 줄을 콘센트에 꼽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때 그 고양이와 나의 거리는 1미터도 채 되지 않았으니 내가 태어나서 경험한 가장 가까운 거리였다. 고개를 노트북에 파묻고 1시간이 좀 넘었으려나. 쌔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낮잠에서 깬 고양이가 바로 앞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무슨 말을 하는 것처럼 아주 깊은 눈빛으로 가만히. 아악. 나는 굉장히 놀란 데다 고양이의 눈빛이 예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주 한참을 대치(?)하고 있었다. 분명히 고양이는 어떤 말을 하고, 나도 어떤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고양이는 한참을 쏘아보더니 이제 나에게 할 말을 다 끝낸 것인지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 우리는 아주 가까이에서 하나의 공간을 공유했다. 카페에 들어갈 때는 어지러웠던 마음이 나올 때는 어쩐지 조금 정리가 된 느낌이었다.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지만 그때 고양이가 내게 건넨 말들 덕분이라고 나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중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장샤오위안은 정말이지 고양이를 좋아한다. 오죽하면 책 제목이 ‘고양이의 서재’고 쓰고 싶은 묘비명이 "그는 늘 자신이 즐거운 고양이이기를 바랐다.”일까. 그는 지독한 책벌레로 ‘서재 가득 꽂힌 책과 디브이디 사이를 나른하게 오가며 자다가 깨다가 읽다가 보다가 상상에 빠지는 고양이’를 늘 꿈꾼다. 그는 마흔이 넘으면 고양이를 꼭 키우겠다며 이름도 천문학자의 이름에서 따 온 ‘케플러’라고 지어두었던데, 지금쯤은 소원 성취를 하셨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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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서국과 후통의 냥이들
mmexport1635501160179.jpg 둥쓰 후통 박물관의 냥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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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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