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과 간식

베이징 후통에선 탕후루

by 심루이

골목 산책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간식이다. 후통에서 제일 많이 먹은 간식은 탕후루(糖葫芦)고,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고약한 냄새의 처우떠우푸(臭豆腐/취두부)였다. 둘다 내게 처음에는 시도하기가 쉽지 않았던 '마이크로 어드벤처(Micro Adverture)'였다. 마이크로 어드벤처는 앨러스테어 험프리스의 <모험은 문밖에 있다>에서 나온 신조어로 짧게, 쉽게, 언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 속 모험을 의미한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작고 소소하게 탐험과 모험을 즐기는 방식이랄까. 필요한 것은 많은 시간과 돈이 아니라 당장 문밖에 나설 용기와 도전 정신이라는 것이다.


베이징을 대표하는 전통 간식인 탕후루는 후통 어디에서나 쉽게 마주쳤는데, 처음에는 너무 달고 비위생적일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참 예쁘고 영롱한 모습이었는데 설탕을 떡칠하고 있는 모습이 과도하게 화장을 한 사람처럼 비호감이었달까? 새로운 것은 뭐든지 한 번 시도해본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나였지만 ‘저것만은’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버렸다.


전방 몇 백미터 앞부터 존재감을 풍기는 취두부는 또 어떤가. 어디서 뭐 썪는 냄새 나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 백프로다. 바로 앞에 취두부 가게가 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산책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만의 내공이 쌓였는지 어느 날 갑자기 마이크로 어드벤처 신이 빙의했다. 자연스럽게 탕후루와 취두부를 사서 입에 넣었다. 너무 달거나 맛없으면 버리면 되지 뭐. 짜릿한 단맛을 각오하고 탕후루를 입속에 넣는 순간. 숨을 쉬지 않고 취두부를 씹다가 숨을 쉬는 순간. 어? 생각보다 엄청 맛있잖아?


이 시간 이후로 나의 일상은 미세하게 변했다. 후통에서 탕후루가 보일 때마다 하나씩 먹으며 당을 끌어 올리고, 식당에서 난생 처음 보는 메뉴를 시키고, 익숙하지 않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손님이 없는 가게의 문을 열어보고, 길거리를 걷다가 긴 줄을 보면 무슨 메뉴인지도 모르면서 자연스럽게 뒤에 가서 서 본다. 집 근처전철역 근처 전병을 파는 가게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긴 줄에 합류해서 내 차례가 오자 바로 앞 중국인을 손가락질 하며 당당하게 외쳤다. "저 사람과 같은 걸로 주세요(来跟他一样的)" 흠칫하던 앞 사람에게 아름다운 이방인의 미소를 보여줬다.


추운 겨울에는 배를 뜨겁게 끓인 슈에리탕(雪梨汤)을 사서 후후 불면서 마시면서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낯선 음료였지만 먹다보니 영혼까지 데워지는 느낌이었다.


보수적인 선택은 내게 안정감을 주지만 발견의 기쁨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에겐 아주 작은 용기와 아주 조금 색다른 관점, 설사 실패하더라고 너그러울 수 있는 관용과 유머가 필요할 뿐이다.


정세랑 작가는 벨기에 여행 중에 전철역에서 강렬한 와플 냄새를 맡고 놀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와플이 환기구를 통해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고 썼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무조건 플레인 와플을 시켜야 한다. 책의 내용을 모두 잊고 '벨기에에선 플레인 와플'만 기억해준다해도 섭섭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장에서는 어찌나 진지한지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나도 비슷한 심정이다. 베이징 후통에서는 탕후루다. 그렇게 달지 않다. 한 번쯤은 꼭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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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2-08-11-22.jpg 이런 줄이 보이면 우선 줄을 서고 품목을 확인한다.


2021-03-22-10-39-40.jpg 슈에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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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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