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에 미쳐 있던 지난날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 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다면, 그것은 시도해 볼 만하다.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얼마예요(多少钱)?’조차 능숙하게 말하지 못했을 무렵, 말하기 수업 숙제를 위해 시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숙제는 가게 사장님과 흥정해서 과일을 사고 그 장면을 녹화하는 것. 딸기와 사과를 사기로 마음먹은 나는 첫 공연을 준비하는 배우 같았다. “얼마예요?”, “이 딸기 달아요? 안 달아요?”(지금 생각해 보니 형편없는 질문이었다. 자기가 파는 딸기가 달지 않다고 고백하는 사장이 어디 있다고!), “조금만 깎아 주시면 안 되나요?” 등의 질문을 달달 외운 것이다. 문제는 사장님이 뭐라고 피드백을 하든, 나는 로봇처럼 내 대사만 할 예정인, 21세기에 딱 어울리는 AI형 연극이라는 것이었지만. 내 대사만 쳤더니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은 '뭐 이런 여자가 있지?' 싶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모범생 피가 흐르는 나는 개의치 않았다. 숙제를 끝내야 했기에! 어쨌거나 사과까지 무사히 사고(값을 깎지는 못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장을 구경했다.
햇살 쏟아지던 주말의 평온함을 깬 건 누군가의 고함 소리였다. 목소리가 큰 중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대화가 싸움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레벨이 다른 괴성이었다. 놀라서 소리가 나는 곳을 살펴봤더니 조금 전에 내게 딸기를 판 그 사장님이 아닌가? 사장님과 젊은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까지 하며 싸우고 있었다. 순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우리도 멀찌감치 서서 구경 대열에 합류했다. 선생님의 단정한 말씀도 안 들리는 마당에 악에 받친 고함소리가 들릴 리가. 구경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한 마디씩 거들며 아는 척을 하는데 우리는 싸움의 원인을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딸기를 사다가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심각하게 싸울 수 있을까? 남편과 토론도 해보고 머리도 굴려보았지만 도무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지 않았다. 딸기 가게 사장님과 젊은 아내가 사랑에라도 빠진 것인가? 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싸움 구경도 할 수 없다니! 이방인의 설움 하나가 추가됐다.
다음 설움은 더욱 뼈아팠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심이 친구인 한국 꼬마와 중국 꼬마가 같이 뒤엉켜 놀다가 중국 친구가 어딘가에 부딪혀서 울었다. 중국 아이는 한국 친구가 자기를 밀었다고 했다. 흥분한 중국 엄마는 한국 엄마들 무리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이에게서 계속 눈을 떼지 않았는데 하필 그 상황을 다들 놓쳤다. 한국 아이에게 물어보니 중국 아이가 먼저 밀었다고 했다. 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해야 하는데 우리의 짧은 중국어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보디랭귀지를 섞어 설명해 봤지만 그 엄마는 제대로 듣지도, 믿지도 않았다. 심지어 다른 중국 엄마들 무리에 가서 우리를 노려보면서 뭐라고 떠들기까지 했다. 뭐라고 수군거렸을지는 안 들어도 라디오다. 언어가 부족한 죄로 대역 죄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날 저녁은 먹구름이 낀 듯 내내 마음이 불쾌하고 개운치가 않았다.
키즈 카페에서도 종종 아이들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 번진다. 어느 호텔에서는 거의 난투극에 가까운 아빠들의 몸부림을 목격하기도 했다. 키즈 카페에서 놀다가 싸움이 나서 CCTV를 확인하고, 중국인 부모와 결국 경찰서까지 가서 합의를 하네 마네 입씨름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몸과 마음이 더 움츠려 든다. 한국 키즈 카페에서는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고 잠시나마 쉴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언제나 두 눈을 부릅뜨고 아이를 졸졸 따라다닌다. 행여나 문제가 생길 경우 내가 증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나게 놀고 싶다는 마음으로 키즈카페에 갔건만 나는 정작 온몸이 굳어서 어깨에 담이 올 지경이고, "조심해!" 혹은 "앞에 친구, 친구!" 따위의 말만 내지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베이징 왕징 지역은 워낙 한인들이 많고, 한국 식당이나 슈퍼마켓도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중국어가 크게 필요하지는 않다. 오죽하면 중국어 회화 연습도 할 겸 근처 시장에서 상추를 들고 “多少钱?(얼마예요?)”이라고 물었는데 중국 사장님이 한국어로 “20위안”이라고 대답할까. 위챗이나 네이버 밴드를 이용해서 한국어로 주문하면 거의 대부분의 상품이 30분 이내로 배달되니 간편하다. 식당에 들어가도 주문에서 결제까지 QR코드로 한 큐에 끝난다.
하지만 생활 반경을 넓히다 보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생기기 마련이기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면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선 띠디(택시)나 택배 서비스를 이용할 때 그렇다. 기사 아저씨나 택배 기사들은 일분일초가 바쁜 사람들이기에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어버버하고 있으면 짜증부터 낸다. 원인 모를 화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항의할 수도 없다. 화끈한 성격의 내 친구는 부당하다고 느낄 경우 한국말로 쏘아붙이거나 욕을 하기도 하던데, 소심한 성격의 사람들은 꿈도 못 꿀 일이다. 타국에서 언어가 부족한 외국인은 무조건 ‘슈퍼 울트라 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겪으면 하루 종일 입맛이 쓰다.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중국어가 절실했다. 서른다섯에 생소한 언어를 시작한다는 무모한 일 앞에서 나도 무모해지기로 했다. 첫 시작으로 베이징에 온 첫 2년 동안 아예 한국어 콘텐츠를 끊었다. 거의 중독 수준이었던 한국 드라마, 예능, 심지어 책까지 아무것도 보지 않고 하루 종일 중국어만 듣고, 읽고, 생각했다. 아이가 하원하고 오면 학생에서 '엄마'로 신분이 전환되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는데,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샤워를 할 때도, 빨래를 널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언제나 중국어를 듣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다 중국 드라마에 빠져 새벽 2-3시까지 드라마를 봤다. 생각만큼 중국어 귀는 쉽게 뚫리지 않아서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1년 반이 지나자 귀가 '조금' 뚫리고, 2년 반 정도 지나자 말이 '조금' 유창해졌다.
그렇게 아주 느린 속도로 괜찮은 실력을 가지게 됐다. 물론 전문용어가 나오면 아직도 헤매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과 안부 정도는 스스럼없이 주고받으며 한국어 자막 없이도 중국 드라마를 본다. HSK 5급도 상위 5%로 꽤 높은 점수를 획득하고 6급을 준비 중이다. 깔끔하고 매끄러운 문장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쓰기와 번역 수업도 들었다. 프로기록러답게 블로그로 나만의 중국어 공부법을 공유했더니 가끔 황송하게 중국어 공부와 관련된 상담을 해 주시는 분들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대강이라도 표현할 수 있으니 양말처럼 늘 함께였던 불안함이나 불쾌감이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5년 전 중국어를 처음 시작할 때 유튜브에서 마윈의 동영상 하나를 여러 번 봤다. 일본 라디오를 계속 들으며 농사를 지었더니 갑자기 귀가 뚫렸다는 어느 농부의 이야기를 따라 해 본 것이다. 당연히 그런 기적은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강연 영상에는 대학생들이 질문하고, 마윈이 답변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진중했다. 그러던 와중에 귀여운 미소를 가진 여대생이 질문을 하나 던졌는데 객석에서 웃음이 빵 터졌다. 웃음을 참으며 마윈이 대답을 했는데 또 모두가 낄낄거렸다. 그 영상을 몇십 번 보고 있자니 그 질문과 답변이 너무 궁금해서 속이 타들어갔다. 한국어 자막을 찾아봤으면 쉽게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찾지 않았다. 이 궁금증을 에너지 삼아 중국어를 배워보고 싶었다. 그때 목표는 딱 하나였다. 2년 뒤에 다시 이 영상을 본다!
2년 뒤 그 영상을 다시 찾았다. CEO의 철학과 고뇌에 대한 질문 사이를 뚫고 나온 그 여대생의 빛나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얼굴 중에 가장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어디인가요?” 마윈의 대답은 이랬다.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요.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랬구나, 요리조리 돌려 보나 미남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마윈의 재치 있는 답변으로 다들 빵 터졌구나. 이 대화를 위해 무려 2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왔다.
30대에 내게 일어난 일 중 가장 뜻깊은 일을 하나 꼽아보라면 주저하지 않고, 중국어를 만난 것이라 대답하고 싶다. 또한 중국어를 포기하지 않은 스스로를 대견해하련다.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문장을 생각했다. '不怕慢就怕站. (늦는 것을 겁내지 말고, 멈추는 것을 겁내라)'. 그렇게 버텼더니 아까워서 그만두지 못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어서 관둘 수가 없었다.
베이징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중국어가 내 삶에서 어떻게 활용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어떤 일을 하든 나는 계속 중국을 공부하고, 중국 콘텐츠를 즐기고, 중국 소식을 궁금해할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생소한 언어와의 사소한 만남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언어라는 것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고, 나는 그 세계의 문을 아주 살짝 열었지만 이전과는 완벽히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까.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했어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싸움 구경 좀 해보려고요’라고 대답하고 싶은데 이를 어쩌나. 아직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걸. 그래도 괜찮다. 나는 관두지 않을 거니까. 여든 정도에 지금보다 훨씬 더 편하게 중국어로 된 소설도 보고, 시도 읽고, 매끄럽게 번역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두근두근한다. 그때쯤 되면 고래고래 싸우는 소리도 알아들을 수 있겠지. 아니라고?! 설마!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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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