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안 먹습니다
무릇 좋은 훠궈 식당이라면 천엽, 대창, 닭모래집 등이 포진되어 있기 마련이다. 오리 창자는 드셔보셨나요? 세상에 이런 것이 있답니다. 어떤 레스토랑에서는 소의 동맥, 개구리 다리, 오리 주둥이도 주문할 수 있다. 154p
우설뿐만 아니라 돈설, 오리 찾아뿐만 아니라 오리 부리, 오리 물갈퀴… 커다란 생선 대가리와 부레… 닭의 염통, 소의 간, 소의 동맥… 이런 것을 훠궈에 넣어 먹느냐고? 먹는다. 156p
허윤선, <훠궈: 내가 사랑한 빨강>
중국 마트에서 닭을 한 마리 시켰는데 머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어서 자동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치킨 마니아라 그간 내가 해치운 닭만 족히 천 마리는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적나라하고 귀여운(?) 닭 머리는 처음 봤다. 놀라서 기겁하고 있는 내게 시큰둥하게 이야기하는 춘.
-근데 여기서는 닭 머리가 없으면 진짜 닭인지 확인할 길이 없잖아. 그래서 넣어둔 거 아닐까?
갑자기 거리에서 매일 만나는 비둘기 떼들이 생각나 소름이 끼쳤다.
‘다리 4개 달린 것 중에는 의자 빼고, 날아다니는 것 중에는 비행기 빼고’ 다 먹는다는 중국이기에 음식 재료를 고를 때 신중할 수밖에 없다. 유리창 너머의 사람들이 맛있게 훠궈를 먹고 있길래 침을 흘렸더니 춘이 또 시큰둥하게 얘기했다.
-여기 개구리 훠궈 전문점이야. 먹어봤는데 괜찮아.
꺅! 개구리 먹은 남자랑 한 이불을 덮었다니!!! 게다가 맛있다니!!! 개구리 고기는 물고기와 닭고기의 중간 식감이라고 하던데 상상하는 것만으로 온몸이 물컹물컹, 흐물흐물해진다.
식재료만 3천여 개가 넘는다는 중국이니 별 요리가 많다. 중국인들은 예전부터 기가 강한 것을 먹으면 몸이 좋아진다고 믿고 야생 동물의 기가 응축되는 부위를 ‘팔진’이라 부르며 귀한 재료로 여겼다고 한다. 코끼리 코, 원숭이 입술, 사슴 힘줄, 잉어 꼬리, 매미 배, 모기 눈알, 상어 지느러미, 제비집, 원숭이 골, 낙타 등고기, 곰 발바닥… 읽는 것만으로도 식은 땀이 흐른다.
희귀 식재료 요리라고 하면 역시 중국 각지에서 나오는 희귀 식재료를 사용해 100종 이상의 요리를 만들어 사흘에 걸쳐 먹는 청대의 ‘만한취안시(滿汉全席)’가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자라와 닭을 찌고 고아서 우려낸 바왕볘지(霸王別姬), 소금과 후추를 가미해 튀겨낸 대표 뱀 요리인 자오옌서돤(椒盐蛇段) (중국요리사들은 기본적으로 뱀을 다룰 줄 안다고 한다.), 백숙 거북이탕 ‘칭둔귀淸炖龟’, 용과 호랑이가 싸운다는 뜻으로 용 대신 뱀을, 호랑이 대신 고양이를 넣어 끓인 광둥요리 ‘룽후더우(龙虎凤烩)’ 등 신기한 음식들이 많다. ‘干锅田鸡’라는 메뉴명에서 ‘鸡’자를 확인하고 닭고기인 줄 알면 큰일 난다. ‘田鸡’는 ‘밭에 있는 닭’이라는 뜻으로 개구리를 의미한다. 사천식 황소개구리 볶음이다.
옌워(燕窝), 즉 제비집은 꽤 보편화된 식재료다. 제비집은 ‘금사연(金絲燕)’이라고 불리는 바다제비가 분비한 타액과 깃털 등으로 만든 둥지로 명나라 시기부터 먹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연회’, ‘연회석’이라는 단어도 중국에서 큰 행사를 치를 때 제비집 요리가 나와야 제대로 된 행사로 인정을 받았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단백질, 아미노산 등이 풍부해 신체의 기운을 왕성하게 북돋는 데다 피부를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그렇구나, 몸에 좋구나, 근데 설명만 들어도 먹기 싫은걸? 내가 사는 동네가 배경이어서 재미있게 본 드라마 ‘小欢喜’에는 고 3 수험생인 아이에게 제비집으로 만든 탕을 계속 건네는 엄마가 나온다. 아이는 우웩 하면서 몸서리를 친다.
그 맛을 상상하며 눈살을 찌푸렸었는데 럭셔리 밀크티 브랜드인 ‘니우차(牛茶)’는 제비 집을 이용한 밀크티를 선보이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주문하려고 보니 138위안. 한국 돈으로 25,000원 정도? 이걸 이 돈 주고 굳이? 흠… 맛은 상상에 맡기겠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중국어를 조금 읽을 줄 알게 되니 메뉴판에서 소름 끼치게 무서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요리들을 찾을 수 있었다. 우선 다람쥐로 만드는 줄 알고 기겁했던 ‘松鼠桂鱼(松鼠가 다람쥐라는 뜻이다)’. 쑤저우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쏘가리(桂鱼) 탕수 요리다. 쏘가리를 다람쥐 모양으로 요리해서 이름에 다람쥐가 들어 있다.
돼지고기 당면 볶음인 ‘蚂蚁上树’. 당면에 파묻혀 있는 다진 돼지고기가 마치 개미(蚂蚁)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듯한 모습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내가 알 턱이 있나. 메뉴판에서 개미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땐 심장이 요동쳤다. 하마터면 무식하게 소리칠 뻔했다. 아, 얘네 개미도 먹어!!!
‘사자 머리(狮子头)’라는 이름을 가진 고기 완자 요리도 만만치 않은 놀라움을 줬다. 곰 발바닥도 먹는데 사자 고기를 못 먹을 이유가 없지 하고 체념했다. 알고 보니 함박 스테이크와 비슷한 돼지고기 완자 요리였다. 사자 고기 아니니 오해 말길 바란다. 고양이 귀라는 뜻의 산시성 요리 ‘猫耳朵’는 밀가루를 고양이 귀처럼 반죽해서 만든 요리다. 고양이 귀로 만든 요리가 아니란 말이다.
가끔 심장이 철렁하는 단점이 있지만 다양한 식재료를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건 분명한 행운이다. 중국은 땅이 넓은 만큼 재배하는 품목들이 많아서 과일과 야채는 매우 싼 편이다. 청경채 한 봉지에 500원도 안 하니 라면을 먹을 때도 마음껏 넣어먹고 2,000원 남짓의 아스파라거스도 매주 구워 먹는다. 다양한 콩줄기 볶음도 베이징에서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으며 ‘소 선지는 괜찮은데 오리 선지는 좀…’이라던 나는 이제 마라탕 최애 재료로 오리 선지를 꼽는다.
베이징에 오기 전에 중식은 느끼하니 내 입맛에는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중국이 넓은 만큼 중식의 세계도 넓고 깊었다. 입을 얼얼하게 하는 사천식 각종 마라 요리들, 다양한 고추의 베리에이션으로 깊은 매운맛을 구현하는 후난식 요리들, 담백한 광저우와 운남 요리까지 모두 다 입에 맞아서 매일 먹다 보니 4킬로나 쪄 버렸다. 재미있는 꼬치 훠궈와 언제나 정답인 마라탕, 바지락 볶음과 마라 닭꼬치, 마파두부와 꽁빠오지딩도 매주 먹는다.
나물 요리를 하려고 콩나물을 샀다. 자연스럽게 기름에 볶고 있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콩나물을 데치지 않고 볶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했을 땐 이미 늦었다. 기름 속에 축 처져 있는 콩나물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입맛의 현지화만큼 언어도 현지화된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럼 벌써 네이티브 뺨쳤는데. 그런 날은 이번 생에서는 요원해 보이지만, 하나라도 뺨쳤으니 만족하는 걸로!
---
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후통(胡同)을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