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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Apr 26. 2022

1. 쉬쩌천, <아, 베이징>: 매콤한 생선, 수이주이

볜훙치에게는 베이징의 맛


40위안짜리 수이주이는 평소에 맛보기 힘든 음식이다. 나와 이밍의 수입으로는 사나흘에 한 번도 사치였다. 우리끼리 와서 수이주이를 시켰다면 더 이상 다른 음식은 주문할 수 없다.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한바탕 젓가락질을 하고 나면 콩나물 줄기 하나 남아나질 않았다.


“맞아. 난 수이주이 없이 못 살고, 베이징을 떠나서는 못 살아. 3일만 못 보면 마음이 너무 허전해.”


볜훙치가 청두에 갔을 때 수이주이를 먹어봤는데 아주 맛이 좋았단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베이징 수이주이가 생각났단다.


쉬쩌천, <아, 베이징> 24쪽, 글항아리, 2019




처음에는 중국 생선 요리를 거의 먹지 못했다. 내륙 도시인 베이징에서는 모든 해산물이 비쌌지만 생선은 그중 특히 비쌌고, 민물 생선 요리가 많아서 맛이 익숙하지 않았다. 곁눈질한 중국 사람들의 식탁에는 생선 요리가 항상 올라가 있어 신기하기도 했다. ‘생선’이 중국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어학당 선생님이 알려줬다. 중국인들은 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매년 설날 아침이면 생선 요리를 식탁에 올리고, ‘年年有余(해마다 풍요롭기를 바랍니다/ May you always get more than you wish for)'라고 인사한다. ‘余’의 발음이 생선의 ‘鱼’ 발음과 같아서 생선이 풍요로움을 상징하게 됐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비슷한 발음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谐音 (xiéyīn)이라고 한다.


외국인으로서는 알기 힘든 현지 식사 예절에서도 생선 요리와 관련된 알아 두면 좋을 팁들이 있었다. 우선 요리의 위치다. 생선 요리는 제일 중요한 사람 앞에 놓아야 하고, 특히 머리는 그쪽으로 두어야 한다. 생선 윗부분의 살점을 다 먹었다고 절대 뒤집으면 안 되는데, 이는 곧잘 생선을 배에 비유하는 중국인들에게 생선을 뒤집는 것은 배를 전복시키는 것과 같아서 불길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고등어 한쪽을 다 발라 먹으면 뒤집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뜨끔 했다. 예의 없는 무례한 외국인 되기가 이렇게 쉽습니다.


민물고기에는 특유의 비린 향이 있으니 무난하게 먹기에는 우선 강한 양념이 들어간 요리로 도전해보면 좋다. 마라, 카레, 마늘 등 강렬한 맛으로 조리되는 '烤鱼(카오위)'나 '水煮鱼(수이주위)'가 대표적이다.


매콤하고 얼얼한 생선 요리 '水煮鱼'는 쓰촨 지방의 생선 요리로 충칭의 기사 식당에서 기사들이 즐겨 먹었던 생선 전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삶다, 끓이다’라는 뜻이 있는 ‘煮’가 들어갔으니 이름으로만 보자면 ‘물에 끓인 생선’이라는 뜻이지만, 사실은 물이 아니라 기름이 가득 찬 그릇에 들어 있는 요리다. 두반장, 마늘, 생강 등 각종 재료와 함께 살짝 익힌 생선을 움푹한 그릇 아래에 깔고, 화자오와 건고추를 잔뜩 넣어 팔팔 끓인 기름을 그릇에 붓는다.


'水煮鱼'를 주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면 건고추와 화자오가 둥둥 떠있는 거대한 그릇이 도착한다. 건고추와 화자오를 살짝 헤집어 보면 깊숙이 숨어 있던 뽀얀 생선 살을 발견할 수 있다. 부드러운 생선 살을 한 입 베어 물면 ‘와, 생각보다 맛있다!’는 생각과 함께 입안이 서서히 얼얼하게 마비된다. 생선 본연의 맛을 살려야 하기에 마라 훠궈만큼 강렬한 소스 맛은 아니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어려운 맛! 커다란 그릇 안에 생선 살 아래 숨어 있는 콩나물, 죽순, 마, 버섯 등 각종 야채들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생선으로는 차오위(초어, 草鱼) 혹은 니안위(메기, 鲶鱼)을 많이 쓰는데 메기가 뼈가 적고 살이 많아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칭위(푸른색을 띄는 잉어과, 青鱼), 융위(대두어, 鳙鱼), 롄위(못고기, 鲢鱼)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식당에서 생선의 종류를 고를 수 있다. 중국 식당에서 생선 요리는 ‘1근’의 가격으로 메뉴판에 쓰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 요리는 메뉴판 가격보다 훨씬 높게 나올 때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水煮鱼'는 보통 2근에서 3근 정도로 요리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 주문하기 전에 해당 요리의 생선이 대략 몇 근 정도인지 미리 물어보고 주문하면 된다. 매니저에게 물어보면 보통 인원수에 맞게 알맞은 생선을 골라서 추천해 준다.


치링허우(七零后) 대표 작가 쉬쩌천의 소설 <아, 베이징>의 주인공 볜훙치에게 베이징은 곧 수이주이다. 고급 요리라 자주 먹지는 못하지만 오래 먹지 않으면 특유의 매운맛이 그리워 몸살이 난다. 청두 등 다른 지역에서도 시도해 봤지만 베이징에서 먹는 수이주이가 최고라는 볜훙치. 고향에서 국어 선생님으로 일한 그는 베이징에서 위조 증명서 장사꾼으로 살아간다. 대학가 근처 길가를 서성이며 베이징이나 칭화대 위조 졸업장을 찾아 헤매는 사람을 찾아낸다. 그의 상상 속에서 베이징은 기회의 땅이었지만 막상 베이징은 그에게 아무 기회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베이징을 향한 들끓는 애정을 숨길 수 없는 볜훙치. 한 건씩 올릴 때마다 그는 친구들에게 수이주이로 '请客'한다. 아내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 그의 꿈에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베이징 수이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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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마라(麻辣)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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