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루이 Apr 28. 2022

2.후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차부뚜어 선생

디테일의 문제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지요?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의 성은 ‘차’(差)’이고 이름은 ‘불다(不多)’이며 어느 성이든 현이든 촌이든 다 있습니다.


후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유노북스, 2016


외국인이 현지에서 제일 빠르게 습득하는 외국어는 그 민족의 습성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같은 단어들. TV에서, 거리에서 어색한 발음으로 허나 자신 있게 ‘빠리빠리’를 외치는 외국인들을 자주 보지 않았는가?


그럴 때면 웃기면서도 왠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든 느긋하게 즐기기보다는 빨리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어 하는 특유의 민족성. 그 단어만큼은 유려하게 말하는 외국인들이 여유가 없는 한국 문화의 증거인 것 같아서 조금은 슬펐다. 하긴 내 성격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 또한 급하다는 것이니 할 말이 없다. 어떤 일이든 빨리 끝내고 싶어 하고, 나보다 늦게 앉은 옆 테이블 음식이 먼저 나오면 화가 난다. 순서를 지키라고!!!


중국에도 우리나라의 ‘빨리빨리’와 비슷하게 대중적인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차부뚜어(差不多)’다. ‘대충, 거의, 그럭저럭’ 정도의 의미일 텐데, 중국인들에게 만병통치약처럼 어느 상황에서도 잘 써먹을 수 있는 표현인 듯했다. 도무지 나오지 않는 음식이나 물건을 사고 싶을 때, 그들은 언제나 이 단어를 썼다. 차부뚜어준베이(差不多准备/거의 준비됐어). 차부뚜어찌우씽러(差不多就行了/그럭저럭 비슷하면 됐지 뭐), 쩌거예차부뚜어(这个也差不多/이 상품도 그거랑 비슷해(=그러니 그냥 사가)).


그러나 그들의 ‘거의’가 ‘완벽’이 되는 순간은 대게 멀었다.


그래서 일찍이 '가장 위대한 중국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후스 선생도 '차부뚜어 선생전'이라는 짧은 글을 통해 중국의 대강대강 문화를 비판했다.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바로 차부뚜어 선생이다. 후스가 묘사하는 차부뚜어 선생의 생김새는 이렇다. 눈이 두 개지만 똑똑히 보지 못하고, 코와 입이 있지만 냄새와 맛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기억력도 떨어지고, 생각도 치밀하지 못하다. 그는 홍설탕을 사 오라는 엄마에게 백설탕을 사 가고, 산시성과 섬서성 구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툭하면 열 십자를 일천 천자로 쓴다. 결국 이름이 비슷한 다른 의사 선생님에게 병을 치료하다 숨을 거둔다. 마지막 그의 말이 압권이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비...슷...하지 뭐...'. 오호통재라.


이 표현은 드라마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즐겨 보던 중국 드라마 <누나의 첫사랑>의 한 장면. 서른이 넘도록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는 여자 주인공 판싱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그만 좀 고르고 적당한 사람 만나(不要太挑剔了, 差不多就行了).” 사랑에 적당히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녀는 결코 적당하지 않은 열살 연하의 초 꽃미남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중국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기묘한 느낌이 드는데 이는 공적인 영역, 그러니까 모두가 흔히 볼 수 있는 길가의 간판이나, 메뉴판의 디테일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A가 들어갈 자리에 E가 들어있는 식으로 하나씩 틀려 있는 영어 단어 스펠. 예를 들어 친구들과 함께 간 펜션 벽에 적혀 있는 글자는 'Togother’. 맥줏집 앞의 'Bear' 등. 아파트 잔디나 메뉴판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한국어 번역도 웃음을 유발한다. 한국 스타일의 빙수 집 앞에서 메뉴를 보고 있는데 '딸기 맛 빙수' 아래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딸기 냄새 빙수. 냄새라는 단어에 한참을 웃었다.


중국인들은 이런 디테일을 하나하나 신경 쓸 여력, 아니 마음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잘 살아지니까. 대강 다 알아들으니까. 우린 세상의 중심이니까.


맹물 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실로 편한 삶의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디테일을 중요시하는, 미적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중국에서의 시간이 두 배로 피로할지도 모르겠다. '오기사'로 유명한 건축가인 오영욱에게 중국 여행은 이런 디테일의 결여를 확인하는 조금은 괴로운 여정이었다. 완벽해 보였던 충칭의 한 호텔은 방구석의 실리콘이 두껍게 발렸고, 전등 스위치는 1도 정도 삐뚤어져 있다. 그는 중국에서 가장 아쉬운 건 '디테일'이라고 지적한다. '안내판의 글씨체와 인쇄물에 표현된 색채의 느낌, 작은 과자의 포장과 화장실의 문고리 손잡이까지 어떤 것에서도 정성과 깊이를 찾아볼 수가 없'어서 따라 해 보고 싶은 게 없다고. 마치 중국인들은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것 같다고 적었다. "나무 무늬 플라스틱 필름이 있는데 왜 진짜 나무를 써야 하지?" 하하.


작가는 이야기한다. 여전히 ‘무엇을?’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중국인들이 ‘어떻게?’를 고민하게 되는 수준에 이르러야 디테일의 강자인 일본을 넘어설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때 한국은 어느 위치에 있을까?



-----

서른다섯, 갑자기 내게는 ‘외계’와도 같은 베이징이라는 도시에 떨어진 이후 언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으로 살다 보니 나는 가끔 아주 건방지거나, 아주 공손한, 그리고 자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생 이불 킥할 만한 에피소드를 모으는 이방인, 어쨌거나 나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들여다보고 적응해 온 일상의 기록들. 


서점과 맥주, 마라(麻辣)를 사랑하는 도시 산책가. 매일 조금씩 걷고, 매일 조금씩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쉬쩌천, <아, 베이징>: 매콤한 생선, 수이주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