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필독도서
일할 때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뭐였을까? 월급, 워라밸, 평판, 비전... 이 수많은 가치 중에서 나는 의외로 이걸 꼽았다. '성장', 그것도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성장'. 그러니 꽤 오랜 재직 기간 중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이직한 동기들보다 작은 연봉도, 비전 없어 보이는 회사도 아닌 성장 없이 소모되는 스스로를 느낄 때였다.
박소연 작가의 '일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생각과 일치하는 제목이라 반가웠다. '연차가 쌓이는 것은 필연이지만, 성장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라는 메시지가 깊이 박힌다. 박소연 작가는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말합니다'라는 직장인들에게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저자다. 하지만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은 '재능의 불시착'이라는 단편 소설 묶음집. 회사에서 있을 법한 일들과 회사원의 고민과 고뇌를 단편 소설 8편에 생생하게 그려냈는데 그 묘사가 너무나 탁월해서 감탄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회사 생활과 회사원들에게 진심이야!
그러니 박소연 작가가 회사원들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유심히 살펴볼만 하다. 중요한 핵심 비법은 알려주지 않고 뜬구름만 잡는 '6시 내 고향 맛집' 느낌이 아니라 진짜 당장 내일 써먹을 수 있는 방법, 조금 더 쉽고 단순하게 일하면서도,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줄 테니까.
책은 크게 <아이디아-실행-협업-커리어>로 이어지는 네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특별히 공감되는 부분을 공유한다.
남은 안 구하고 자기 자신을 구하는 사람들: 취미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를 구해주는 대가로 경제적인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의외로 구할 누군가를 ‘자기 자신’으로 삼는 사람이 많다. 남을 구하라고 했더니 자신을 구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할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취향을 기준으로 삼는다. 48p
서비스나 상품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철저하게 서비스를 사용할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당연하고 중요한 핵심사항인데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하다 보면 자칫 매몰되어 잊어버리기 쉽다. 박소연 작가는 덧붙였다. 남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내 취향이 가장 우선인 것, 우리는 그걸 예전부터 ‘취미’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는데 이 서비스를 쓰는 타깃 유저가 진짜 이걸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한 서비스 기획자에게 형광펜을 쳐서 건네주고 싶은 문장이다. 역시, 자기 취향은 본인 집에서 충분히 뽐내는 것이 좋겠다.
‘생각의 기쁨’을 쓴 유병욱 카피라이터의 회사 전 대표가 했다는 말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무리 취향이 아니어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는 꼭 본다. 어쨌거나 그 속에는 이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을 테니까.’ 대중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 수 없다.
먼저 나부터 구하고 남을 구하라: ‘산소호흡기 법칙’
같은 맥락에서, 밀도 있게 일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먼저 구하고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약간의 단단한 얼굴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시간을 공짜로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 서 있기 때문이다. 238p
설렁설렁하게, 비슷비슷하게 일하는 것 같은데 연말에 가서 보면 성과가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비결 중 하나는 실적에 이바지하는 주요 업무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것이다. 235p
거절이 어려운 ‘예스 걸’이었던 예전이 생각나 조금 아찔해졌다. 가끔 제대로 거절하지 못해 굳이 나의 주요 업무가 아닌 일에 나의 귀중한 시간을 훅 써버렸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업무가 산더미인데! 결국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그럼 누굴 원망해야 할까? 나에게 부탁한 그 사람? 아니, 바로 나!!! 내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내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해야 한다. 다른 이의 부탁에 무조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라는 것은 단연코 아니다. 회사 생활에서 협업만큼 중요한 것이 없으니까. 하지만 우선순위를 세워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쁘게 일한다는 느낌에 속지 않고 밀도 있는 진짜 일’을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이메일 답장 70개를 쓰기 전에) 순수하게 본인이 목표로 하는 업무 성과를 위해서 쓰는 '집중 업무 시간'을 늘려야 한다. 본인의 업무 집중 시간이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체크해 보면 생각보다 이 시간의 비중이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크다'. 산소호흡기 법칙을 떠올리며 집중 업무 시간을 5시간으로 늘리자.
보이게 일하라, 심지어 전기밥솥도 힘든 척 어필하는데: 성과의 시각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라고 가슴만 치지 말고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법을 배우자. 일종의 성과 시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성과의 근거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98p
밥솥 이야기를 보자마자 낄낄 웃었다. 맞네, 맞아. 증기 배출을 시작합니다. 밥이 완성됐습니다. 매번 수다스럽게 보고하는 나의 쿠쿠 밥솥. 하물며 전기밥솥도 밥을 하며 이렇게 부지런히 자신이 하는 일을 어필하는데, 우리는 ‘아이고, 나대고 그런 거 제 스타일 아니에요’ 이러고만 있지는 않았나? 내 성과를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담당자도 모르는 성과를 상대방이 알 수는 없다’는 것은 진리다.
일할 때 묵묵한 겸손은 필요 없다. 성과를 시각화하여 분명히 보여주자. 이런 능력이 꼭 필요한 사람들은 리더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리더, 인성이 훌륭해서 본받고 싶은 리더, 팀 분위기와 팀원의 성장에 신경 쓰는 리더… 뭐 다 좋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리더는 팀원들의 성과와 노력을 잘 포장해서 외부에 멋지게 알려 우리의 가치를 높여주고, 그에 맞는 보상을 주는 리더다. (=개고생한 거 잘 포장해서 회사에서 인정받게 해주는 리더와 함께라면 개고생도 그리 고생처럼 느껴지지 않고 ‘성장’으로 느껴진다는 걸 예전 회사 생활을 통해 배웠다)
우리는 일하면서 배운다. 그리고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 있든지 꾸준히 성장하게 되어 있다.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템포에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좀 더 나답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이 책은 그곳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작은 가이드라인 모음집이다. 409p
스트레스가 심할 때면 이런 글귀를 포스트잇에 붙여 두었다. '나를 위해 일하자, 나답게 일하자.' 다른 누군가(대게 리더)나 경제적 보상만을 바라보지 않고, 나를 위해 일하니 아무리 거센 고난을 만나도 쉽게 지치지 않았다. 나답게 일하니 많은 기회들이 열렸다. 그러면서 직원으로서, 인간으로서도 성장했다.
당장 내일부터 써먹어 봐야지!라는 실용적인 팁부터 일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태도를 점검해 볼 수 있는 물음까지 400페이지가 넘는 책에 꽉 채워져 있다.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술술 읽히는 데다 밑줄을 치고 싶은 부분이 넘쳐 난다. 다 읽은 이 책을 매일 일터에서 분투하고 있는 남편 책상에 슬쩍 올려 두었더니 며칠 뒤 남편이 하는 말. “앞으로 신입사원 들어오면 꼭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네.” 와우, 덤덤한 선비에게 나올 수 있는 최고의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