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나를 모른대요.

두레아이들 괜찮아, 괜찮아 시리즈 14

by 심루이


할머니가 나를 모른대요.


아이는 책을 받아 든 순간 이렇게 말했다. “슬픈 이야기일 것 같아.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게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나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 아이와 나는 그런 슬픈 예감을 가지고, 이 책을 한 장씩 넘겼다. 우리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육아를 도맡아 하며 손녀를 위해 캠핑도, 등산도, 달리기도, 자전거도 타던 못하는 것이 없던 즈린카 할머니는 어느 날 치매에 걸려 이상한 질문들은 쏟아놓는다. 안경은 어디에 있는지, 학교에는 언제 가는지. 급기야 보석처럼 귀한 손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슬프지만은 않다. 아빠는 이야기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할머니는 늘 우리 곁에 계실 거야. 할머니를 기억할 때마다 우리는 행복할 거야.” 손녀는 대답한다. “할머니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나는 할머니가 누구인지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이 마지막 문장을 볼 때는 뭉클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바쁜 워킹 맘으로 살던 시절, 엄마는 내 아이의 엄마 역할을 자처했다. 신생아 때는 아이를보기 위해 백팩에 각종 반찬을 가득 넣어 우당탕탕 신발을 벗으며 우리 집에 들어 오셨고, 설거지를 하다가도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갑자기 고무 장갑을 벗고 아기 침대로 돌진하셨다. 오롯한 3년. 야근을 하다 집에 들어오면 엄마와 딸이 자는 작은 방에서는 아이의 젖 비린내와 엄마가 붙인 파스 냄새가 동시에 섞인 묘한 냄새가 났다. 나는 가끔 그 냄새를 맡으며 소리 없이 울었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남은 마지막 청춘을 먹고 크는 건지 엄마는 급속도로 늙었다. ‘너무 행복한데, 너무 힘들다’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엄마는 아직도 그 시절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아이에게 전에 없는 사랑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마종기 시인의 <손녀를 안고>라는 시를 가끔 읽는다. 하루 종일 어색하게 너를 안고 지낸 두 팔도/네 옹알이와 눈 오는 풍경이 좋은 마취제였는지/너를 방에 눕히고 나서야 온몸이 갑자기 저려온다./서서히 꺼져가는 내 몸 위에서라도 바르게 서거라./어느새 젖은 눈 그치고 건넛집 불빛이 따뜻하다.


아이는 할머니의 ‘꺼져가는’ 몸 위에 바르게 우뚝 서 있다.




노인 10명 중 한 명은 치매 환자라고 하니, <할머니가 나를 모른대요>의 이야기는 언제든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남은 것이 커다란 절망이나 상심이 아닌 주인공 손녀처럼 빛나는 마음이라면 좋겠다. 할머니가 잃어버린 기억까지 다 그러모아 우리가 2배로 행복하고, 즐겁게 기억하겠다는 씩씩한 바람이었으면 좋겠다.


출판사 두레아이들에서 나온 <괜찮아, 괜찮아> 시리즈를 좋아한다. 예민하고 감성적인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의 감성과 걱정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야 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도움이 되는 시리즈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기가 너무 무섭다는 아이에게 <발표하기 무서워요>를,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건지 궁금하다는 아이에게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를, 신학기를 맞아 새로운 환경이 불안하고 걱정된다는 아이에게 <걱정은 걱정 말아요>를 건넸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힘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아이는 더 단단해졌다.


특히 자그레브 출신 삽화가 ‘하나 틴토르’가 그린 <할머니가 나를 모른대요>의 그림은 특별하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져 책꽂이에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할머니,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서 보고 싶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동화를 자주 읽는다. 아이에게 읽어주는 동시에 나에게도 읽어준다. 누구나 마음속에 아프고, 상처받은 작은 아이가 살고 있지 않은가? 동화를 읽다 보면 치유된다. 동화에는 그런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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