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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망원 서점 산책] 땡스북스에서 당인리책발전소까지

보통의 책방

by 심루이


책방은 ‘보통’이면 된다.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다.


이시바시 다케후미,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


일본의 유서 깊은 책거리 진보초. 그곳의 백 년 역사 인문 서점 ‘이와나미 북센터'에 85세의 나이에도 매일같이 출근하는 진보초의 명물 ‘시바타 신’. 시바타 신의 이야기를 3년 동안 밀착 취재한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의 이 문장을 보고 피식 웃었다. '보통'이라던가, '평범'이라던가 하는 가치가 제일 어렵다는 걸 역시 85세 할아버지는 잘 아시는 것이 아닌가.


보통의 책방을 찾아 헤맨다.





합정역 땡쓰북스(Thanksbooks)

-서울 마포구 양화로6길 57-6

-매일 12:00-21:00


베이징에서부터 한국 독립서점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그중 단연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던 합정역 땡쓰북스(Thanksbooks). 이기섭 대표의 철학이 인상적이기도 했고, 탄생 배경(건물주에게 직접 제안했으나 난 못하니 니가 해봐라)도 흥미로웠고, 책과 관련된 재미있는 활동들 또한 조금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2011년 3월 오픈하여 올해로 11년째가 됐으니 급하게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 일상인 독립 서점 분야에서 시조새 정도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곱창 냄새가 풍겨오는 합정 뒷골목에서 고고하게 빛을 내고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하나의 커다란 노란 조명 같기도 했던 그곳, 땡스북스. '인생에 무해한 딴짓도 하며 살고 있나요?', 유리창에 적힌 문장의 습격을 받으며 문을 열었다.


IMG_3084.JPG 시끌벅적한 합정역 사이를 뚫고 나오는 아우라, 'Enjoy the little things'
IMG_3085.JPG 인생에 무해한 딴짓도 하면서 살고 있나요? 네, 너무 딴짓만 해서 문제입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는 기쁨도 크지만, 좋아하는 책을 편안한 공간에서 고르는 기쁨도 큽니다.’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이기섭 대표가 홍대 앞 ‘더 갤러리’의 리브랜딩을 진행하며 건물 1층의 갤러리 카페를 책방으로 바꿀 것을 건물주에게 권했다. 건물주가 '그럼 니가 한 번 해봐'라고 해서 직접 책방을 하게 되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에 뉴욕 어학연수를 하다 만난 서점 ‘반스앤노블’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아름다운 풍경에 반한 동양 청년이 그와 비슷한 공간을 만든 것이다. 물론 합정역으로 이전하면서 카페와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은 사라지고 서서 책을 살펴볼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다. 어쨌건 이 대표는 뉴욕에서 반스앤노블을 경험한 뒤 서점이 단지 책을 파는 곳만이 아니라 고단한 삶에 풍요와 윤기를 더해주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땡스북스에는 좋은 책이 정말 많다. 저녁 무렵 찾아갔는데 큐레이션이 너무 좋아서, 아주 오래 서점에 머물렀다. 서점에 있는 모든 책들의 '책등'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이곳에서 눈에 띈 시리즈는 인디고 출판사의 딴딴 시리즈. 그중 훠선생의 훠궈예찬집인 <내가 사랑하는 빨강: 훠궈>. 누구에게도 훠궈 사랑은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나이니 읽지 않을 수가. 읽자마자 뜨근한 훠궈 국물을 들이마시고 싶어서 몸이 간지러워지는 책이다.


땡스북스는 한 달에 한 번 출판사와 함께 주제가 있는 기획 전시 및 <금주의 책>, <땡스, 초이스> 등 다양한 코너를 통해 겉과 속이 같은 책, 디자인과 콘텐츠가 잘 어우러지는 책도 소개한다. 홈페이지에 매주 제일 인기가 있었던 책들이 업로드되니 멀리 있지만 땡스북스의 선택이 궁금하신 분들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셔도 좋을 듯하다. 근방에 있는 서점들의 개성을 위해 독립출판물은 없다. 도서 구매 금액의 10%를 적립해 주니 근처에 있는 분들은 자주 들러볼 만한 공간이다.


추천 이유가 쓰여 있는 노란색 땡스 페이퍼를 읽는 재미도 크다. 땡스북스를 떠올리면 노란색이 저절로 같이 떠오른다. 지난번에 들렀던 최인아책방의 다크 초록초록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노란색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참, 땡스북스(Thanksbooks)라는 이름은 책이 좋아서, 책에게 고마워서 '책들아, 고마워'라고 인사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책을 좋아하고, 책에서 위로받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귀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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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007.JPG 곱창집 웨이팅하는 사람들과 책을 보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골목, 삶의 다양성이란 이런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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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종이가 인상적인 땡스 페이퍼, 이곳에서 발견한 책. 내가 사랑하는 빨강! 훠선생의 훠궈예찬




문 닫은 비플랫폼

-서울 마포구 독막로2길 22 3층

-매일 13:00-20:00 , 월요일 정기 휴무


비플랫폼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서 문이 닫혀있었다. 서점 투어하실 분들은 땡스북스와 당인리책발전소 중간에 비플랫폼을 넣으시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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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인리책발전소

-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4길 10-8

- 매일 10:00- 22:00


김소영 아나운서가 운영하는 당인리책발전소. 서점이라기보다는 북 카페다. 미디어에서 많이 봐서 그런지 낯설지 않았다. 얼마 전에 김소영 전 아나운서의 <진작할 걸 그랬어>를 읽었다. 책을 읽으니 유명인이 하는 책방인가 보다 했던 마음에 변화가 찾아왔다. 이 사람 책에 진짜 진심이구나를 느끼게 되어서. 게다가 책에 아무리 진심이어도 녹록지 않은 책방을 꾸준히 '경영'하며 분점까지 열심히 내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 도전을 해내고 있는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제일 든든한 응원은 그녀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문장들이 해내고 있겠지만.


책이 없었다면 나란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다. 30여 년 동안 읽어온 문장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고 믿고 있다. 사람에게 잘 기대지 않는 성격인 내가 그럼에도 외롭지 않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절망하지 않았던 건 언제나 책이 곁에서 말을 걸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준 덕분이다. 책과 문장이 가진 힘을 사람들이 잊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


김소영, <진작할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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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마감시간이라 조용히 공간을 구경했다. 이층에는 늦은 밤에도 여전히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간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질 때는 역시 무언가에 몰입할 때인 것 같다.


책발전소 북클럽 유월의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잔망스러운 금정연 작가의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만들어지고, 유행하고, 사라질 말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콘텐츠는 신조어의 쓸모를 생각해 보는 책이다. 신조어를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맘에 쏙 드는 구성. 매일 양산되는 수많은 신조어 가운데 존버, 플렉스, 홧김 비용, 취준생, 틀딱 등 스물네 개의 단어를 골라 그 안에 숨겨진 현대인들의 욕망과 생각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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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금정연 작가의 책, 그래서...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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