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퇴근하고 들어오면 신발장 근처에서 늘 하는 대화가 있다.
"오늘도 심이 보느라 수고 많았지"
"아냐, 하루 종일 일하느라 오빠가 더 고생했어"
심이가 태어나고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갔을 시절,
하루 종일 미역국만 먹고 아기랑 씨름하는 내가 불쌍해서,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하러 나가는 오빠가 안됐어서, 정말 진심을 담아 서로에게 하던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굉장히 무미건조해지긴 했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빼먹지 않는다.
마치 대사가 단 하나밖에 없는 연극배우들처럼, 비슷한 대화를 매일 저녁, 매우 기계적이지만 따뜻하게 나눈다.
너무 지치던 어느 날에는
'그래 내가 오빠보다 힘들었다. 너는 나가서 커피도 마시고 동료들이랑 수다도 떨고 그래서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오빠가 단 한 번이라도 도둑이 들었음이 분명해 보이는 엉망진창 집에 눈살을 찌푸렸거나, 초능력으로 끓여둔 국이 짜다고 타박했거나,
떨어진 과자도 그냥 먹이는 육아의 위생상태에 대해 간섭했다면 나는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오빠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문득 오빠도 어느 날에는 "그래 내가 너보다 힘들다. 넌 아기 자면 낮잠도 자고 책도 보잖아"라고 말하고 싶었을 거란 확신이 든다.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어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는 건 그것이 우리의 감정 마지노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남자, 한 여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육아.
아빠라는 이름으로 무거운 가장의 짐을 지게 하고, 그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엄마라는 역할을 주는 '아이를 키운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 '내가 더 힘들다'고 진정으로 생각하고 말해버리는 순간 우리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네가 뭘 알아, 해버리면 우리는 시속 180km 정도로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와 배려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건 심이를 키우면서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주례사 대신 읽어주신 아빠의 편지에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라'라는 글귀가 있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순간, 관계는 위험해지고 인생은 빈곤해지기 쉽다.
한 남자가 아버지가 되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 한 여자가 엄마가 되어 육아를 하는 것, 가족들이 서로를 챙기고 사랑하는 것.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주는 것.
인생에서 그 무엇이 당연할 수 있을까.
이 명제를 잊지 않는 한 오늘도 우리의 무미건조하지만 명랑한 대화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