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발바닥

by 심루이

심이의 신체 중 내가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발바닥이었다.

모든 곳이 황홀할 만큼 신기하기 짝이 없었지만 발바닥은 특히 그러했다.

갓 구워낸 식빵의 속살처럼 뽀송한 발바닥. 세상의 때가 조금도 묻지 않은, 세상 어디와도 아직 닿지 않은 발바닥은 그 자체로 기적 같았다. 나는 심이의 작은 발바닥을 꼼지락거리며 심이가 잠에서 깨거나, 잠이 들 때 가만히 입을 맞추곤 했었다.

무엇이든 잡고 일어서면서 심이의 보들 했던 발바닥은 조금 거칠어졌다.

단단해졌고, 붉어졌고, 군데군데 이물질도 묻었다. 그것은 어떤 흔적처럼 은재에게 남겨졌다. 아이는 매일 조금씩 새로운 곳을 밟았다. 안방의 침대 옆, 거실의 선반 아래, 주방의 전자레인지 주변으로 영역을 확대해가며 아이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다리를 부들거리고, 뒤꿈치를 꼿꼿하게 들고, 발가락을 세웠다. 넘어지고 부서지며 심이의 발바닥은 조금 더 거칠어졌지만 즐거워 보였다. 나는 심이가 잠들기 전 여전히 발바닥에 입을 맞추며 무사히 새로운 세상과 만난 오늘의 증거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 발바닥이 가져다줄 앞으로의 새로운 세상에도.

오빠가 신체 부위 중 가장 자신이 없는 곳이 바로 발이었다. 크고 넓은 발바닥이 특히 그러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발을 만져보고 싶어 가만히 손을 내밀었을 때 오빠는 소스라쳤다. 군대 때 생겼던 무좀도 걱정되고 쩍쩍 갈라진 발바닥이 거칠다며 접근 금지령을 내렸다. 오빠의 발바닥은 마치 처음 들었을 때 한없이 생경했던 오빠의 힘들고 외로웠던 과거 같았다.


나는 오빠의 발바닥에 담긴 세월을 가만히 되짚어본다. 어느 날엔가는 어머니와 누나를 지키기 위해 늦은 밤 통근열차로 뛰어들었고, 어느 날엔가는 생계를 위해 흙먼지를 오래 밟았고, 어느 날엔가는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내려다보이는 길 위에 서 있었을 발바닥. 그 발바닥으로 좋아하는 선배에게 서툰 고백을 안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의 시간에 고단 했겠지만 정직했을 것이다. 그것을 한 사람의 인생을 담고 있는 '발바닥 과거'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전혀 알 길이 없는 상대의 '발바닥 과거'를 신뢰할 수 있을 때 '결혼'이라는 걸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나만의 착각일지라도.

심이와 오빠가 나란히 누워있다.

네 개의 발바닥이 나를 내려다본다. 마치 흑과 백처럼 대비되는 크기와 질감.

어쩜 이리 다를 수 있을까.


두 개의 보드라운 발바닥을 지키기 위해 나머지 두 개의 발바닥은 내일도 땀이 차도록 세상과 만날 것이다. 아빠를 쏙 빼닮은 딸은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지 모르는 채 내일도 일어섰다, 엉덩방아를 찧었다를 반복하며 조금 더 즐거울 것이다. 아마 아주 오래 아빠 발의 고단함과 힘겨움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것이니까. 부모들은 아이가 오래 눈치채지 못할 수만 있다면 자신 발바닥의 거칠음쯤은 얼마든지 허락할 수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도록 네 개의 발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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