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이가 얼마 전부터 드디어 엄마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만 9개월이 훌쩍 넘은 시간이니 늦었다고도 볼 수 있다.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할머니가 있었기에 그랬다. 할머니만 있으면 엄마가 어디 가든 상관없더니 지난주부터 갑자기 내가 외출을 할라치면 빽빽 울고 아빠가 업을라치면 온몸을 뒤틀며 나에게 온다. 나를 보며 가끔은 개구쟁이처럼, 가끔은 애교쟁이처럼 웃는다. 짬을 내 책을 보고 컴퓨터를 하면 내 주위에서 맴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를 찾아낸다. 빠르게 기어 와서 내 다리를 붙잡고 선다. 안아달라고 업어달라고 혹은 자신이 여기에 있는 걸 알아 달라고 맑은 눈빛으로 이야기한다.
심이가 듬성한 머리숱을 흩날리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촌스러운 웃음을 한가득 품고 내게 다가오는 걸 보고 있으면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그냥 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이렇게 엄청나다는 사실에 그러하다. 이 작은 세상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남편도 나도 건강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그러하고, 만약 그렇지 못할 경우 다가올 현실을 생각해도 그러하다.
아직 이 아이는 전혀 모르는 무시무시한 바깥세상을 생각해도 그러하고, 이 아이도 누구나처럼 가끔 상처받고 스스로를 자학하며 자랄 것이라 생각하니 그러하고, 그 작았던 콩알이 어느새 이렇게 커져버렸다는 사실에 그러하다. 무엇보다 내가 이 작은 우주를 만들었고 지켜내야 한다는 점에 그러하다. 그녀에게 나는, 원하든 그렇지 않든 향후 몇 년 동안은 절대적 존재인 것이다.
아이는 내가 어떤 한 사람에게 이렇게 '절대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다.
'너 없이는 못 살아'라고 했던 남편의 오래전 고백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
그래서 밥 먹는 속도를 예전보다 3배 정도 빠르게 만들고, 아무도 없을 땐 '엄마 쉬한다~'고 소리치며 화장실 문을 열고 볼일을 보게 하는 사람. 그래도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버린 사람.
뽀뽀는 절대 안 해줘도 한 번 웃어주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 생명이 이렇게 귀하다는 걸 내게 알려준 사람. 그래서 세상 모든 아이들을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사람. 휘파람 한 번 불어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게 웃는 사람.
똥은 꾸준히도 참 많이 싸는 사람. 매일 비슷한 하루하루를 절대 비슷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 흉터처럼 남은 나의 상처도 영원히 잊히게 만들 사람. 하지만 언젠가는 '너도 너 같은 딸 낳아봐라'라고 기어코 말하게 만들 사람. 설렘과 책임감을 비슷하게 주는 사람. 설렘이 클 땐 행복하고 책임감이 클 땐 우울하게도 하는 사람. 가끔 나를 이성을 잃고 주책없게 만드는 사람.
오늘이 얼마나 그리울지 오늘이 가기 전에 깨닫게 해 주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과 사랑.
오늘도 우리는 서로를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