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끔찍한 상상

by 심루이

나는 매일 조금은 끔찍한 상상을 한다.


오늘이 내 인생에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상상.

나와 세상, 혹은 당신과 나의 마지막.


삶과 죽음.


굳이 뉴스나 길가의 앰뷸런스를 바라보고 있지 않아도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에서 엉켜 있고 우리 바로 옆에서 숨 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삶을 사랑하게 되는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이런 상상을 종종하면서 나는 잠들어 있는 오빠의 얼굴을 본다.

코를 골고 평안히 자고 있는 오빠의 얼굴.

결혼을 하고 내가 바랐던 유일한 것은 오빠의 억대 연봉도, 모두에게 부러움을 살만한 좋은 집도 아닌 30년 뒤에도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상’이었다. 그때에도 별다른 걱정 없이 건강한 코골이 소리를 내며 조금은 찡그리며 자고 있는 오빠의 얼굴을 이렇게 내려다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있을까?

우리가 그때에도 나란히 손을 잡고 걷고, 심이가 큰 아픔이나 사고 없이 무사히 서른 살이 되고 나와 비슷하게 늙어가는 것, 그것만큼 기적적인 일이 세상에 있을까?

평범해 보이지만 그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끔찍한 상상을 하는 유일한 이유는 당신에게 더욱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기 위함이다.

내게 당신이 얼마나 귀하고 또 귀한 존재인지 순간순간 표현해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불현듯 닥칠지도 모르는 ‘마지막’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도록. 혹시 당하더라도 너무 억울하지는 않도록.


어느 작가는 그랬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정말 그럴지도.

우리의 마음은 끄집어내어 당신에게 보낼 때 비로소 진짜가 된다.

내 마음속에서만 맴돌았던 사랑은 결국 시퍼렇게 멍들어버릴지도 모른다.


심이를 보고 돌아가는 엄마에게 ‘엄마의 딸이라 행복하다’고 이야기한다.

업무에 지친 오빠에게 ‘오빠랑 같이 살아서 좋다’고 이야기한다.

어느새 좁아져 버린 아빠의 어깨를 가만히 만져본다.

내 친구라서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뽀송한 심이의 볼 따귀를 꼬집어본다.

무뚝뚝한 버스 기사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넨다.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을 온 마음으로 듣는다.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상들을 소중히 한다.

마음만큼 쉽지는 않지만 아예 까먹어 버리지는 않도록 매일 끔찍한 상상들을 조금씩은 해둔다.

마지막임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려 하루가 분주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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