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Chaeg/프리즘오브/어라운드/번역하다/마니에르 드 부아르
나는 스스로를 잡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런 만큼 산만하고 깊이가 얕은 사람. 우리에게 패션, 브랜드, 셀럽, 화장품, 여행 등 이것 저것에 관한 최신의 정보를 던져주지만 금세 더 새로운 정보를 향해 나아가는 잡지처럼.
‘왜 하나에 집중하지 못할까’ 싶은 마음에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어느 날 그런 면이 나만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대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잦은 결심, 반성의 사이클에서 나만의 생산성과 즐거움을 찾아가면서 나는 잡지 같은 스스로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황효진 작가는 <아무튼, 잡지>라는 책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잡지에서 문득 대단한 교훈을 발견하고 단박에 인생이 바뀔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노트 한구석에 몰래 적어두고 싶을 만큼, 떠오를 때마다 펼쳐보며 감동할 만큼 마음을 때리는 글귀 역시 잡지보다는 책에서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잡지의 훌륭한 점이다. 보는 이를 가르치려 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태도로 슬쩍 말을 건넬 뿐이다. ‘이거 어때?’
그러니까 '이거 어때?'의 스리슬쩍한 자세가 바로 잡지의 자세다. ‘새로 나왔는데 이거 어때?’, ‘이렇게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넌 어때?’, ‘여기 한 번 가보는 거 어때?’라고. 가끔은 발랄한 친구처럼, 가끔은 다정한 언니처럼, 가끔은 진지한 선배처럼 위로와 공감과 제안을 내밀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않고 그저 오늘 하루 즐겁게 지내라고 했다. 그것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내 삶에 적용시키면 조금쯤 즐거워졌다. 삶의 기쁜 순간들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그런 작은 시도에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친한 친구와 수다 떠는 마음으로 잡지를 읽는다. 문학과 번역과 카페와 맛집과 여행과 인문에 관한 잡지들을. 서점에 갈 필요도 없다. 밀리의 서재에서 다양한 잡지를 간편하게 접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열심히 잡지를 만들고 있었구나 놀랄 수밖에. 종류가 참으로 많지만 몇 개만 소개.
#책Chaeg: 처음 읽고 완전 감탄했던 잡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책과 문화에 관한 월간지인데 솔직히 밀리로 읽다 보면 소장 욕구가 생긴다. 여름으로, 감정의 지도, 이게 바로 멋, 끼니 너머의 세계 등 감성적인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책과 문장, 사람들, 그림, 장소까지 총망라해서 소개한다.
#악스트(Axt): 소설을 위한, 소설 독자를 위한, 소설가들에 의한 월간 소설 잡지. 소설가들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톱클래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다. 인터뷰 형식의 글을 워낙 좋아해서 즐겨 읽는다. 개인적으로 '직장인의 갭이어', '어른의 공부법'이 인상적이었다.
#프리즘오브: 매 호 한 영화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담는 계간 영화잡지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캐롤, 라라랜드 등 마니아층이 깊고 이야기 거리가 많은 영화들을 샅샅이 파헤친다. 인생 영화를 소장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 될 듯.
# 번역하다: 번역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잡지다. 동종업계에서는 첫 시도라고.
# 마니에르 드 부아르: 르몽드코리아가 펴내는 계간 무크지. 주제는 문화 예술, 기후변화를 비롯해 생태, 젠더, 동물, 에너지, 자원, 국제분쟁, 음모, 종교, 대중음악 등 다양하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준비생들과 대학생, 대학원생, 연구자들의 필독지로 사랑받아왔다고 한다. 잡지 이름은 '관점이 있는 사유 방식'을 의미하며...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글의 질이 상당히 높고 어려워서 논문을 읽는 느낌을 주는 글도 있다. 하지만 지레 겁먹지 말고 마음에 드는 주제가 있다면 한 번 시도해 보자!
그리고 내가 애정 하는 잡지 '어라운드'도 있다. 어라운드는 뭐 설명이 필요 없죠.
그 외 패션 분야에 메종/바자/엘르/싱글즈/코스모폴리탄/에스콰이어/마리끌레르 등이 있고, 여행/사진 분야에 트래비/SRT 매거진/월간사진이 있으며 올리브/블루스트리트/커피앤티와 메종, 좋은 생각 등도 있다. 에듀윌 시사상식도 읽어보면 꽤 도움이 될 듯.
나는 진득하지 못한 스스로를 한심해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을 하면서 앞으로도 매일을 잡지처럼 살아갈 것이다. 이제는 안다. 잡지를 닮은 삶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황 작가의 고백처럼 '이런 잡다함과 산만함이야말로 생활에서도 일에서도 스스로를 지탱하는 동력'이라는 것을.
책 좋아하시는 분, 앞으로 더 많이 읽고 싶으신 분 '밀리의 서재'를 추천하고 싶다. 제일 유용한 기능은 문장 하이라이트로 마음에 닿은 문장들을 간편하게 저장하고 언제든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원래 종이책의 질감을 좋아해서 이북을 멀리 했지만 밀리의 서재를 한 번 이용한 이후 여러가지 장점에 빠져들었다. 내 독서 생활은 밀리의 서재 구독 전과 후로 나누어 질 정도. 읽고 싶은 책의 반도 없지만, 있는지도 몰랐던 책들이 더 많이 있으니 그걸로 충분. 속는 셈 치고 한 달 무료 경험해 보세요. (저는 밀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내돈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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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