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벌고 잘 살기 프로젝트
소비에 관한 철학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한때 물욕도, 계획없는 자잘한 소비도 많았던 나는 타국살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평소에 아껴서 소중한 '경험'(예를 들어 여행 같은)에 쓰자는 쪽으로 변화됐다.
'한국의 그레타 툰베리'를 꿈꾸는 아이와 함께 하는 지구를 위한 고민과 더불어 회사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나만의 일을 찾아보기로 결심한 후부터 '적당히 벌고 잘 사는 일'이 중요해진 이유도 있다.
요즘 폭등한 물가 때문에 '거지방'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극단적인 이름이 슬프긴 하지만 절망적인 현실을 즐겁게 풀어내서, 좋은 소비를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혼자보다 함께라면 훨씬 더 멀리, 오래갈 수 있으니까. 아무 소비도 하지 않는 날을 칭하는 무지출데이 챌린지도 트렌드처럼 번졌다.
거지방과 무지출데이를 듣자마자 생각난 단어, 소비단식.
작년에 서박하님의 <소비단식 일기>라는 책에서 본 단어인데, 아껴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소비를 아예 중단하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 예를 들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음식과 옷, 난방비 등 외에는 일절 돈을 쓰지 않는다.
*<나는 빚을 다 갚았다>의 저자 애나 뉴얼 존스가 처음 사용한 단어다.
*<소비단식 일기>는 제 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으로 밀리의 서재에서 읽을 수 있다.
서작가님은 당시 1,600만 원의 카드빚과 500만 원이 찍힌 한글 카드값을 보고 소비단식을 결심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인상적인 구절.
-빈 마음을 소비로 채우려 했다. 소비는 내가 이룰 수 있는 가장 쉬운 성취였다.
'내가 이룰 수 있는 가장 쉬운 성취'라는 표현이 어찌나 공감되던지. 당시 서박하님은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인해 상담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책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과한 소비와 정신은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하노버 의과 대학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쇼핑 중독자 대부분이 우울과 불안에 시달린다고 한다. 이 연구는 쇼핑에 사로잡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현상을 다룬다.
어쨌거나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서작가님의 소비단식 일기다.
-적당히 한계를 두는 방식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정한 액수를 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다가 결국은 고삐가 풀리고야 말았다. 그냥 나를 위해서는 앞으로 1년간 아무것도 사지 않기로 하자.
서박하님의 소비단식 원칙은 대략 이랬다.
-1년간 필수품을 제외하면 나를 위한 돈은 쓰지 않는다.
-생필품은 산다. 단, 정말 다 쓰고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딱 하나만 산다.
-누군가를 만날 때는 쓴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소비단식 요요가 오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녀는 결국 성공한다. 그리고 소비단식 기간이 지나도 현명한 소비 습관은 이미 체화되어 있어서 결코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올바른 소비를 위해 스스로의 욕구와 습관을 잘 파악하고, 나만의 소비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는 동기부여가 중요해서 그것에 중점에 두고 원칙을 세웠다.
대원칙은 이것이다.
-자잘한 소비를 줄여 의미 있는 곳에 쓰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잘' 살기 위한 습관 만들기.
-아이에게 돈이 아닌 올바른 경제 습관 물려주기.
아래는 소원칙들
1. 계획 없는 쇼핑은 하지 않는다. 중복 소비를 줄이고 소비에 보다 엄격해지자.
-똑똑한 소비를 위해 필연적인 것은 제대로 정리하기. 나의 소비 중 많은 부분은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끼기 위해서는 잘 분류해서 정리하는 습관이 매우 중요하다. 같은 항목별로 모아두는 것이 재고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집에 있는 아이템(휴지 등 생필품)이라면 할인하더라도 다 쓰기 전까지는 새로 구입하지 않는다.
-저장 공간을 생각하고 구입한다. 예를 들어, 나는 겨울 외투가 많은 편인데 이제 새로 겨울 외투를 산다면 둘 공간이 없다. 무조건 하나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쉽게 구입할 수가 없다.
2. 노지출데이
-일주일에 하루 정도 노지출데이를 정한다. 산책할 때 물 챙겨가기, 집에서 아이 간식 준비하기, 일주일 식단 미리 짜기 등 미리 준비하고 생각해야 노지출데이를 만들 수 있다. 아이와 함께 하면 더 의미 있게 할 수 있다.
3. 아낀 비용 따로 모으기
-오늘도 잘 아꼈다!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아낀 비용을 따로 모아서 투자의 종잣돈을 만든다. 작은 금액이지만 쌓여가는 걸 보는 것이 꽤 큰 동기부여가 된다. 요즘 토스 굴비 적금이 이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몇 천 원, 혹은 몇 만 원씩 '쓸 수 있었지만 쓰지 않은 액수'에 대해서 저금한다.
https://blog.naver.com/wonsim105/223078195098
* 토스굴비 추천코드: 날쌘뿔돔7703
4. 가계부는 기본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역시 가계부 쓰기. 전체 예산을 항목별로 정해두고 소비를 기록한다. 기록하며 나의 소비 생활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균형 있는 지출을 할 수 있다.
5. 쿠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소비를 줄이기 쉽지 않은 것이 식료품이다. 마켓컬리, 네이버장보기, 쓱닷컴, 그리팅... (쿠팡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등 이쪽 분야도 출혈 경쟁이 심해서 정기적으로 10,000원-15,000원이 쿠폰이 꽂힌다. 무조건 쿠폰을 이용해 장을 보고 최대한 카드 포인트를 활용한다.
-기존에 있는 쿠폰&모바일상품권 리스트를 만들자. 사실 선물이나 경품으로 받는 쿠폰들이 많은데 활용을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다. 유효기간을 명시한 쿠폰 리스트를 만든다. 이런 쿠폰은 무지출데이 때 활용하면 좋다.
6. 아이를 향한 원칙들
-절약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 나름의 소비 철학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다. 토스 유스카드로 용돈을 주고 있다. 용돈을 스스로 관리하고 소비를 계획하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
-아이와 함께 주식과 경제를 공부하고 다양한 앱 이벤트를 해본다. 토스 퀴즈를 맞추면 몇 십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데 게임마니아인 아이는 몇 십 원을 받아도 소리 지르며 환호한다. 이런 앱테크의 효과는 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10원이라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배우는 데 있다.
-같이 환경 위기와 윤리적 소비에 대해서 공부하니 심이는 소비에 더욱 엄격하다. 버려지는 옷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걱정이 많아서 함부로 옷을 사지 않는다. (유일하게 과한 지출을 하는 분야가 문구... 용돈으로 사는 거라 말리지는 않는다. )
*윤리적 소비란 생산부터 유통까지 그 모든 과정이 나의 소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윤리적으로 판단하여 소비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오늘 우리가 소비할 패스트푸드점 닭고기 공장은 'Deforestation(삼림 채벌)'의 결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고민해 보는 것.
-오늘 엄마 무지출데이니까 도와줘!라고 말하면 '아이스크림 오늘 참을게'라고 먼저 배려해 주거나 자신의 용돈을 이용해서 간식을 산다. 엄마의 목표를 솔직하게 공유하고 아이가 응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심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절대 남기지 않는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식판 위에 빵을 남겼다고 슬퍼하길래 깜짝 놀라서 "그러면 전에는 급식을 한 번도 남기지 않은 거야?"라고 했더니 학기 시작 후에 단 한 번도, 한 톨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진짜 넌 급식이 중의 최고다... 감탄했음.
https://blog.naver.com/wonsim105/223097528028
*토스 추천코드/초대 코드: 69230 6698
7. 소비 말고 생산
-소비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생산적인 활동을 한다. 내게는 독서, 블로그&브런치에 글 쓰는 일이 그것이다. 콘텐츠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는 일만큼 의미 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배우는 일에는 아끼지 않는다. 영어, 중국어, 독서 코칭, 번역 등 최근 내가 제일 크게 돈을 투자한 분야는 배움이었다. 배우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투자하되 그것을 생산성이 있는 무언가로 만들어 내는 것에 고민하자.
8. 소문 내기
-각종 할인 정보들과 절약의 기쁨, 성과를 소문 내기.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기도 하고, 가족에게 적극적으로 말하고 칭찬 받기. 기부는 꾸준히 하지만 절약의 기쁨을 아는 배우자를 만난 것도 복 중의 하나-요즘 안삼당도 '여러 번의 맛없는 외식'은 지양하고 '맛있는 한 번의 외식을 지향'하시는 중.
9. 책은 100권만 소유하자.
-책을 정말 좋아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정말 좋은 책 100권 만 소유하기로 결심했다. 예전의 나는 책을 소유하기를 좋아했고, 지금의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좋은 변화다.
https://brunch.co.kr/@riverain/213
10. 좋은 이들과 더 적극적으로 나눈다.
-아끼는 삶을 추구하면 다른 이에게도 인색해질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나를 위한 소비는 아꼈으니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비는 쓸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쁘게 할 수 있다. 오히려 다른 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더 마음을 담아서 하게 된다.
11.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자주 상기한다.
-예전에는 확실히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더 벌고, 소비도 줄이지 않겠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가 내게 큰 기쁨을 주지 못한다. 자유가 훨씬 소중하다는 것을 자주 떠올린다.
-소비 단식을 미니멀리즘과 가볍고 건강한 식단으로 잇는다. 나누고 버리기, 과식하지 않기, 채소 위주로 식사하기 등.
-채식을 지향하고 있다. 물론 지금도 고기를 먹는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예전과 달리 고기를 먹는 횟수를 나름 제한하고 있다. 혼자 먹을 때는 먹지 않는다, 연달아 먹지 않는다, 고기보다는 야채에 중점을 둔다 등.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채식주의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것보다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소비단식 일기>는 극단적인 사례를 다루긴 하지만 한 번쯤 읽어보면서 자신이 소비 습관과 원칙을 고민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자신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느낀다면 짧은 기간이라도 소비단식을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서박하님이 남편을 따라 타국에서 사는 동안 느꼈던 감정도 나와 너무 비슷해서 놀라면서 읽었다. (외국에서 살면 외모에 대한 관심과 물욕이 사라지는데 사회적 시선에 대해 훨씬 덜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건강한 자존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등등)
-실제로 사람의 정체성은 자존감, 그리고 소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
-자존감이 낮아졌을 때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제공하니 사람들의 명품 소비 욕구가 감소했다.
-내가 가진 것들로 나를 표현하지 않아도, 지금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는다.
소비단식 일기 중 발췌
이번 기회에 자신만의 소비 원칙을 기록해 보자!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