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헤아리는 말들의 시대

세이브더칠드런, 그리다 100가지 말상처

by 심루이

1.

많은 속담들이 있지만 나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을 제일 좋아한다.

말투와 말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고, 한 마디 말이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어떤 가시 돋친 말들은 마음에 들어와서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가시를 어릴 때 만났다면 더더욱 찾아내기도, 뽑아내기도 쉽지 않다.


나이가 많다는 것만으로 아이에게 단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언어를 쓰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가 아닐까. 존중하는 말을 들으며 자란 아이가 그런 언어를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니까.

세이브더칠드런 마라톤 (4).jpg


2.

주말에 심이와 세이브더칠드런 국제 어린이 마라톤을 뛰고 와서 제대로 살펴 본 <그리다 100가지 말상처>.


세이브더칠드런이 100주년을 맞아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100가지 말을 선정하고,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을 아이가 직접 그림으로 그려낸 기획이다.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면 마음이 참 아프다.


100가지 말 중에는 '너 같은 애는 내 자식도 아냐'라는 말도 안 되는 문장도 있지만 '위험해, 하지 마!', '꿈이 그것밖에 안돼? 욕심을 더 가져봐' 같은 평범한 부모들이 흔히 쓰는 문장도 있다. 찬찬히 읽어보니 이런 상황에서는 뉘앙스를 조금 바꿔보는 게 좋겠다는 식으로 공부가 됐다. (*아래 파일로 첨부했다)


자기가 커오며 들어왔던 말을 무심하게 내뱉고 '나도 그런 말 들으며 자랐으니 너도 그래야 한다'라는 식의 무책임한 언어생활은 지양돼야 한다. '그것이 현재를 사는 어른들이 명심해야 할 아동인권의 시대정신'이다. 남궁인 전문의의 문장을 읽어보자.


나는 그 100가지의 말과 그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거의 안 들어본 말이 없었다. '쓸모없는 녀석', '그런 건 꿈도 꾸지 마',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같은 거의 일상어라고 여겼던 말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의 그림은 여린 마음에 크게 남은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감정과 내 기억을 되짚어 보고 재차 놀랐다. 예민한 아이였던 나는 그 말들이 하나같이 두려웠고, 그때마다 상처를 받았다. 유년기 내내 그 말들을 떠올리며 내가 전혀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보냈다. 그를 극복하기까지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


헤아린다면 대체할 수 있는 말이 분명히 있다. 적어도 우리는 이 말이 아이에게 어떤 감정을 줄 것인지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자의든 타의든 자정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현재를 사는 어른들이 명심해야 할 아동인권의 시대정신이다. 그 아이들이 커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 것이다. 나아가 헤아리는 언어의 세상을 열 것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세상에 많은 상처들이 있지만 말로 받는 지속적인 상처가 가장 독하고 날카롭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말을 전해주는 상대가 아이들에게 전부와 같은 부모라면 그 상처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뉘앙스를 조금 바꿔보는 것으로도,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숨을 고르는 것으로,

설사 내뱉었다 하더라고 후회한다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으로

우리는 조금 더 상대를 감싸 안을 수 있을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 마라톤 (10).jpg
세이브더칠드런 마라톤 (12).jpg
3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를 재개한 세이브더칠드런 국제 어린이 마라톤 2023


3.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제안하는 헤아린다면 대체할 수 있는 말들을 알아보자.


-다 너 잘 되라고 이러는 거야 -> 이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너 바보야? 이것도 몰라? -> 아~ 네가 이걸 몰랐구나

-이것마저 못하면 뭘 할 수 있겠니 -> 이걸 한번 해보았으면 좋겠는데 혹시 어려우면 이야기해도 좋아

-용돈 가지고 쓸데없는 것 좀 사지 마. -> 용돈이 나중에 모자를 수도 있으니까 아껴서 쓰는 게 좋겠다.

-빨리 숙제부터 해-> 숙제부터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

-꿈이 그것밖에 안돼? 욕심을 좀 가져봐 -> 너의 꿈이 그것이구나. 이야기해 주어서 고마워. 꿈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줄 수 있어?

-너 나중에 집에 가서 보자-> 이 부분은 집에 가서 상의 좀 해보자. 이것을 어떻게 할지 네가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그만 놀고 공부 좀 해-> 엄마는 이제 네가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

-또 사면 돼-> 원한다고 항상 살 수는 없단다.

-내 말이 맞으니까 말 들어-> 엄마 생각은 이런데, 네 의견은 어때?

-성적이 왜 이래?-> 잘하고 싶은데 네가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와서 속상하구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같이 고민해 보자.

-내가 너만 할 땐 안 그랬어-> 내가 네 나이 때에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어

-이게 속상할 일이야? -> 속상했구나

-내가 잘못 키운 탓이야-> 엄마가 미처 알려주지 못한 게 있었나 보다.

세이브더칠드런 마라톤 (1).jpg
SE-6981c1d4-a4bf-4a1b-b2c8-5162ed3ea835.png


4.

이런 말을 듣고 난 뒤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아이들의 그림들.

깊은 슬픔이 묻어난다.

SE-cee26270-883a-4276-a763-237d922063af.png
SE-e52311f8-88f5-48a2-af43-512ead2f5f78.png
SE-ecbd4f06-a326-4608-994c-66cc52175657.png
SE-fd0f15ea-412c-43d8-9170-e9e1a4b254df.png

5.

다짐해 봅시다.


상처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가시 돋친 말을 하지 않기.

나이를 권력 삼아 아이에게 협박하지 않기.

어느 순간에도 비아냥거리지 않기.

헤아리는 언어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내가 먼저 맞이해보기.

세이브더칠드런 마라톤 (26).jpg


-매일 읽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 친구 같은 남편 춘, 친구 같은 딸 심이와 살고 있습니다.

나의 기록이 당신에게 작은 영감이 되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소비단식을 아십니까 (서박하_소비단식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