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재,<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우리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빙과는 흙빛이 도는 더위사냥이었다. 이걸 얼마나 좋아했는지 초여름이면 벌써부터 냉동실에 넣어둘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자꾸 흐뭇해진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재봉틀 옆에 앉아서 할머니 숨소리, 실을 툭툭 뜯어내는 소리, 초크로 면 위에 선을 긋는 소리를 들으며 알 수 없는 평안을 느끼곤 했는데 한낮이면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더위사냥을 뚝 반으로 부러뜨렸다. 그러곤 말없이 곁에 와서 내 작은 손안에 반쪽을 쥐여주었다. 나란히 앉아서 사각사각 베어 먹는 소리. 달콤한 빙과로 입술은 끈적거리고. 옥수수보다 이게 낫지? 할머니는 물었고 내가 대답 없이 마주 보고 실쭉 웃으면 다음날은 어김없이 옥수수를 삶아주었다. 여름은 그렇게 언제든 반으로 무언가를 잘라서 사랑과 나누어 먹는 행복의 계절. 간혹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할머니 몰래 속으로 기도를 하고는 했다. 내 수명을 뚝 잘라서 당신께 주세요. 그렇게라도 좀 더 지금일 수 있다면, 조금만 더 느리게 녹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가 지금 이대로의 우리일 수 있다면.
고명재,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한때는 비구니, 한때는 할머니 손에서 자란 고명재 시인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시를 닮은 문장들이 가득한 이 산문을 나는 아주아주 아껴 읽었다.
특히 이 문단을 읽은 후 '더위사냥'은 내게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
뚝 잘라서 당신께 드릴게요.
아주 조금만 더 우리가 지금 이대로의 우리일 수만 있다면요.
아주 조금만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