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다해 오늘을 쓰다듬는 일
스물둘 언저리, 누군가의 죽음을 곁에서 목격하고 난 뒤부터 나는 생을 더욱 잘 살게 되었다.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딱 하나, 오늘이 나의 혹은 누군가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걸 이전보다 더 자주 기억했을 뿐. 그걸 자주 상기했더니 어떤 거대한 것들은 사소해지고 어떤 사소한 것들은 거대해졌다. 봄 햇살을 닮은 각성의 세계랄까.
그 세계에서는 갑자기 다가온 절망도, 처음 경험해 본 병실 생활도, 보호자라는 신분도 별반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진심을 다해 오늘을 쓰다듬는 일. 생은 그렇게 시작되고 마무리될 것이기에.
고난이 닥쳐올까 전전긍긍하던 어린 나를 통과해 고난이 닥쳐오지 않는 인생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어른이 됐다. 인생은 원래 쓰디쓴 것이고 고난과 재난은 새까만 하늘의 보름달처럼 우리를 비추고 있거나 혹은 오는 중이지.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을 찾을 뿐이다.
김영민 교수가 투병 중에 남긴 이 문장이 정답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병에 대한 면역력이다. 면역력은 정신력이다. 최고의 정신력은 사랑이다.
사랑은 어쩌면 모든 것이다.
퇴원 후 두 달째, 세균은 아직 엄마의 왼쪽 눈에 살아 있고 외래 진료는 매주 이어지고 있다. 진료와 치료를 기다리며 병원 복도에 앉아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이들의 아픔과 슬픔이 담긴다. 우리만 아픈 건 아니구나, 다들 싸우고 있구나. 치졸한 위안과 공감에 기대어 순간을 버틴다.
어쩌면 저들도 우리를 담고 있겠지. 그렇게 조금씩 가벼워지겠지.
한 쪽 눈에 안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 엄마는 젤리를 곱게 쥐어 기사 아저씨에게 건넨다. 달달한 포도향이 택시 안에 가득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