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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루이 May 27. 2024

마음을 두껍게, 두껍게

돌아온 일상 

“내 수명을 뚝 잘라서 당신께 주세요. 그렇게라도 좀 더 지금일 수 있다면. 조금만 더 느리게 녹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가 지금 이대로의 우리일 수 있다면.”


고명재 시인은 아이스크림 '더위사냥'을 반 잘라 할머니와 나눠 먹던 여름을 떠올리며 이렇게 적었다. 병실에서 아이스크림을 쉽게 뚝 떼어 나누어 가지듯 아픔과 수명을 나누는 풍경을 자주 상상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내가 대신 아플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귀한 마음.


아침에 눈을 떠 좋아하는 중국어를 듣고, 학교에 가는 아이에게 '사랑해'라고 소리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주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린다. 금요일 저녁은 치킨을 시켜서 맥주 한 잔과 함께 했다. 병실 안에 있을 때는 평온한 일상이 다시 내게 문을 열어줄 것 같지 않았는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은 유유히 흐른다. 모든 순간에 잔잔한 뭉클함이 섞인다. 


처음 해 본 병실 생활은 '지금'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되었다. 병실에서 매일 2만 보를 걷던 상해 가족 여행을 떠올리며 힘을 냈던 것처럼 오늘의 한 장면은 언젠가 다른 위기의 비타민이 되어 줄 것이니까. 때론 어떤 한 장면이 우리를 오래 살게 한다. 


행정상의 실수로 회사에서 엄마 병원비를 지원받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이번 경험이 가르쳐 준 것은 간단 명료했다. 내가 손쓸 수 없는 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로 소중한 이를 다치게 하지 말자. 우울의 감정에 빠져들지 않도록 마음을 두껍게 두껍게 만들자.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잊지 말고 소중한 사람들과 나, 그리고 오늘을 지키자. 


위기를 그냥 위기로만 기억되게 하지 않을 힘이 나에게 있다.  


살아 있다는 사실에 한껏 기뻐해도 될까. 커피 한 잔이 내 앞에 있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겨도 될까. 불행에 몸을 숨기고 있는 다행들을 끄집어 내서 고맙다고 말해봐도 될까. 


된다, 무조건.

되고 말고.

떡볶이의 주는 엄청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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