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즉흥적인 우리의 여름여행
한때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던 아빠는 경추 척수증의 영향으로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거동이 불편해졌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돌보다 어깨 회전 근개가 파열됐다. 그렇게 중요한 근육이 어깨에 있었다니... 매일 사용하는 몸이지만 모르는 부위가 참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진행된 어깨 수술. 보조기 착용 5주, 그리고 재활이 이어졌다. 더딘 회복 속도와 달리 25년 여름 더위는 이르게 찾아왔고 나는 하루하루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어쩌면 견디지 못했는지도, 그냥 시간을 죽였는지도. 처음 겪는 부모의 돌봄은 내게 너무 낯설고 벅찬 감정을 선사했기에 몸의 피곤함보다는 마음의 롤러코스터가 문제였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넘어지는 아빠를 앞에 두고 제일 선명했던 건 무기력함이었다. 뭘 할 수 있지, 뭘 해야 하지...라는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정답은 없었고 걱정과 불안이 나를 잠식했다. 감정을 지우려 행동을 선택해야 했다. 적당한 온도의 물로 보글보글 거품을 내 엄마 머리를 감기는 순간, 꽤 날렵하고 회전력이 좋은 보행 보조기를 아빠와 함께 미는 시간은 그나마 괜찮았으니.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지. 집에 돌아와 연락이 안 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아빠가 혹시 어디서 넘어지지는 않았을지, 또 119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생긴 건 아닌지 불안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여름휴가 계획은 미뤄지고 있었다. 이 무더위에, 이 상황에 가고 싶은 곳도 없다,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여행을 준비할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다 덜컥 싱가포르행 티켓을 끊었다. 취소 불가 호텔도 함께 결제.
무대뽀적인 실행력은 단 하나의 바람만을 담고 있었다.
잠시 낯선 곳에 가서 생각 없이 쉬자.
2.
왜 싱가포르였을까? 생각 없이 쉬기에 싱가포르는 적합한 곳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이 여행은 십여 년 전 친한 언니의 SNS에 적혀 있던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싱가포르, 왜 이렇게 내 스타일이지.
과연 언니 사진 속의 싱가포르는 깔끔한 미래 도시 같은 인상이었다. 나도 그녀와 비슷한 취향이니 싱가포르가 맞을지 몰라. 막연한 생각으로 싱가포르 여행을 마음속에 품었다. 오래된 바람은 때로 즉흥적으로 실현된다.
목적지 선정과 호텔 예약, 출발까지 2주. 이렇게 짧게 해외여행을 준비한 적은 없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마다 구글 지도를 꺼내 싱가포르 각종 스팟을 찾았더니 이미 그 도시가 낯설지 않았다. 지겹게 본 마리나 베이 샌즈, 도심의 오아시스 포트캐닝 공원, 낭만적인 강가 클락키까지 여러 번 다녀온 느낌.
싱가포르는 내게 특별한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떠나기 전에 깨달아 버렸다.
매일 걷고 매일 쓰는 도시산책자